[서울파이낸스 박시형 기자] 기업은행이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내놓은 보이스피싱 방지 앱 '피싱스톱'이 상당수의 스마트폰에서 작동조차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기업은행이 지난 8월 정식 출시한 '피싱스톱' 앱이 안드로이드 9 기반의 스마트폰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는 메세지를 남기고 자동 종료된다.
작년 8월 구글이 안드로이드 9를 정식 출시하면서 개인정보 정책을 강화해 써드파티(3rd Party) 앱에서는 통화 중 녹음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피싱스톱'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보이스피싱 통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와 패턴, 문맥 등을 실시간 분석한 뒤 진동이나 소리로 범죄 여부를 알려주는 앱이다.
실시간 분석을 위해서는 '통화 중 녹음' 기능을 사용해야 하는데 구글의 정책 때문에 앱 자체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기업은행은 지난 3월부터 정식출시 직전까지 진행된 시범운영 기간동안 339건의 의심 전화를 탐지하고 약 30억8000만원의 피해를 예방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정작 정식 출시한 이후 상당수의 실사용자들은 서비스를 전혀 이용할 수 없다.
피싱스톱은 스팸 차단 앱인 '후후'에도 엔진을 제공했는데,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9 이용자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있다. 후후 앱은 안드로이드 9 이용자의 화면에서 '보이스피싱 탐지(피싱스톱)' 아이콘을 아예 빼버렸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안드로이드 9 이상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늘어 '피싱스톱' 앱 운영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스마트폰에 안드로이드 9이 설치된 비율은 전체 사용자의 절반을 조금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통신 시장은 일반적으로 2년이라는 약정기간이 끝나면 단말기를 교체하는데 안드로이드 8 이하 이용자의 단말기 교체 주기가 이미 시작됐다. 또 스마트폰 제조사의 OS 업데이트도 이뤄지고 있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이용자가 늘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서비스 최초 기획이 2017년 시작됐고, 본격적인 개발 킥오프도 2018년 6월부터라 이슈를 미리 대응하기 어려웠다"며 "올해 3월 첫 출시 당시 상당수가 안드로이드 9 미만 OS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출시했다"고 말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단말기 출고 때부터 앱을 '선탑재' 해버리면 구글의 정책을 우회할 수 있다. 구글은 제조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앱 탑재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LG전자가 제조한 LG유플러스 판매 단말기에서는 후후 앱이 '선탑재' 돼 안드로이드 9 이상 단말기에서도 피싱스톱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후후 관계자는 "앱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제조사의 사이닝 키(Signing Key)를 확인하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이뤄진 선탑재 앱은 기능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점유율 68%(2분기 기준)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앱 선탑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유사한 앱이나 서비스가 많고, 최근 선탑재 앱을 줄여가는 추세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미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들이 많이 나와있다"며 "통신사의 요청에 따라 앱을 선탑재할 수는 있겠지만 전체 단말기에 앱을 특정 앱을 선탑재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스마트폰 제조사와 미팅하면서 조율하고 있으며, 잘 된다면 해당 제조사 스마트폰 이용자는 안드로이드 버전과 무관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