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의 빛나는 ~~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어린 시절 KBS(한국방송공사)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시작되면 들리던 노랫말이다. 사실 누구의 노래인지도, 어떤 가사인지도 몰랐지만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란 구절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인지 낯선 무엇인가를 접할 때마다 이 노랫말이 떠오르곤 했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를 접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가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를 모르시나요?'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는 정상적인 의약품 사용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게 사망, 장애, 입원진료 등 중대한 피해를 입은 환자 및 유족에게 사망일시보상금, 장애일시보상금, 장례비, 진료비 등을 피해구제 급여로 지급하는 제도다.
2014년 '약사법' 개정으로 도입된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는 법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무다. 그러나 실제 운영은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피해구제 급여에 필요한 재원은 의약품 제조업자와 수입자가 납부하는 부담금으로 마련된다.
의약품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피해구제 신청을 하면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접수와 부작용 조사·감정을 한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의 의약품부작용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한 후 그 결과에 따라 피해구제급여를 지급한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시행 이후 2019년까지 5년 동안 피해구제 신청은 총 535건이었고, 340건에 대한 피해구제급여가 약 65억원 지급됐다. 유형별로 보면 진료비가 213건(62%), 지급액은 사망일시보상금이 약 48억원(74%)으로 가장 많았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금방 알겠지만,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는 일반적인 소비자 피해구제와 다르다. 의약품도 제조물이므로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제조업자 등을 상대로 소송을 통해 구제받아야 한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소비자가 의약품 제조업자의 고의·과실, 인과관계 등을 입증해야 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기본법' 등에 분쟁조정제도를 두어 소비자가 손쉽게 피해구제를 받도록 돕는다. 하지만 분쟁조정제도는 분쟁당사자가 조정안에 합의하지 않는 경우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한계가 뚜렷하다.
이러한 한계를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극복하는 제도가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다. 즉, 국가가 미리 사업자에게 부담금을 걷어 자금을 마련하고,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의 적정성을 판단한 뒤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 제도에 따라 소비자는 사업자와 분쟁해결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가를 상대로 피해구제를 청구하고 신속히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의 사법(私法) 관계를, 소비자와 국가 사이의 공법(公法) 관계로 바꾼 셈이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의 장점은 명확하다. 소비자 피해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소비자 피해구제 전반에서 이런 제도를 시행하지 않을까?
사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에는 중요한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하나는 의약품의 정상적 사용에서 발생한 부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중대한 피해여야 한다.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는 사업자와 소비자 모두 과실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중대한 피해를 사회화하여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공적 제도다. 이런 공적 피해구제는 의약품 부작용, 환경오염,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 정책적으로 필요한 분야에 제한적으로 도입·시행되고 있다.
필자가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보던 시절에는 소비자분쟁조정제도가 없었다. 소비자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소비자 피해구제의 필요성이 인정되면서 소비자분쟁조정제도가 도입됐다. 국정과제로 '공정거래 감시 역량 및 소비자 피해구제 강화'를 내건 현 정부에서 소비자 피해의 효율적 구제를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