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실명계좌 발급' 허들 관건···"추가 협력 미지수"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이제야 추가 실명계좌 발급에 물꼬가 트인 거죠. 실력만 있다면 실명계좌 발급이라는 진입장벽을 뚫을 수 있다는 사례가 생긴 건데, 기류변화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의 은행 실명계좌 확보 이슈 이후 한 코인마켓 거래소 관계자의 반응이다. 국내 다섯 번째 원화마켓 거래소 탄생 예고는 중소 거래소들에 기류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긍정적 시그널'로 읽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기존 4대 거래소 외에 고팍스처럼 한두 곳 정도가 추가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생존을 위해 코인마켓 신고로 방향을 틀었던 이들 중 처음으로 실명계좌를 확보한 사례가 나온 데다 최근 활발해진 업권법 발의로 산업 진흥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면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금융당국의 문턱을 넘은 가상자산거래업자는 총 26곳으로 집계됐다. 이 중 현재 국내에서 원화거래가 가능한 가상화폐 거래소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곳이다.
나머지는 모두 실명계좌를 받지 못해 코인마켓만 운영하고 있는데, 전북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확보한 고팍스가 원화마켓 사업자로서의 변경신고서를 제출한다고 해도 원화거래가 막힌 곳은 거래업자의 80%를 넘어선다.
코인마켓은 말 그대로 비트코인 등을 통해 다른 가상화폐를 사고팔 수 있는 거래소를 말한다. 당초 고팍스를 비롯한 상당수의 중소 거래소는 지난해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른 사업자 신고 마감을 앞두고 코인마켓으로 사업 방향을 튼 바 있다.
일단 코인 전용 거래소로 운영한 뒤 추후 실명계좌를 발급받아 사업자 변경을 하려는 이른바 '플랜B' 전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팍스 사례는 앞으로 원화거래소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이 막혀 코인 마켓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거래소들에도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며 "실명계좌 발급 추가 사례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은행의 전향적인 검토와 결단을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선 벌써 고팍스의 뒤를 이을 거래소를 추리고 있다. 현재 원화마켓을 재개할 가능성이 큰 곳으로는 △지닥 △한빗코 △후오비코리아 등이 거론된다. 이들 거래소는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준비를 갖추고 은행과의 물밑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닥의 경우 시장 점유율도 꽤 높다. 전날 기준 점유율은 0.3% 안팎으로, 이는 고팍스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유력 대선후보들이 가상자산(가상화폐)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을뿐더러 업권법 논의도 활발해지면서 산업 진흥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며 "나머지 거래소에 대해서도 원화거래를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빅5+α'를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은행권의 판단이다. 많은 이들이 긍정적인 전망에 힘을 보태고는 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가뜩이나 코인마켓 전환 후 거래량 급감 등으로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에겐 추가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은 허울 좋은 얘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작 실명계좌 발급 여부의 키를 쥔 은행들 반응 역시 현재로선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자금세탁 관련 리스크가 여전히 더 크다는 게 은행권의 입장이다. 해킹이나 자금세탁 사고가 터지면 실명계좌를 내준 은행에 책임이 돌아가는 구조도 부담 요소로 꼽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도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 관련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 중"이라면서도 "다만 실명계좌 발급은 별개다. 뛰어난 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갖춘 곳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수익보다 감당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