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국민연금 ESG 진정성 시험대 '석탄투자 제한전략'
[전문가 기고] 국민연금 ESG 진정성 시험대 '석탄투자 제한전략'
  •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 yes24@seoulfn.com
  • 승인 2022.09.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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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국민연금의 '석탄투자 제한전략'이 연내 수립될 전망이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오리무중이다. 지난해 5월 말 탈석탄 선언 이후, 국민연금은 전 정부 임기 내에 배제전략을 충분히 수립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5개월 후인 11월에야 용역을 발주해, 대선 이후 신 정부의 코드를 염두에 둔 '정치적 고려'라는 의심이 일각에 있었다.

하지만 접어두자. 이제 중요한 점은 석탄투자 제한전략을 어떤 기준과 수준으로 설정하고 적용하느냐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말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올린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용역사는 국민연금이 석탄투자 제한전략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주요 의사결정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적용범위(산업범위, 석탄종류, 자회사 포함 범위), 정량기준 지표 선정(매출비중, 생산량·생산비중, 설비용량·설비비중), 정량지표 강도 설정(석탄비중 30% 기준, 50% 기준), 정성기준 도출(녹색채권 투자허용 여부, 에너지 전환 기업 투자허용 여부) 등이다. 

이를 토대로 3가지 옵션을 도출했다. △옵션 1 : 석탄 매출비중 30%, 에너지 전환 기준만 미도입 △옵션 2 : 석탄 매출비중 30%, 모든 정성기준 도입 △옵션 3 : 석탄 매출비중 50%, 모든 정성기준을 도입하는 기준이다.

옵션 1의 경우, 2023년 4조원 대의 국민연금 석탄기업 투자액은 2026년 이후 모두 사라진다. '에너지 전환 계획'이라는 정성기준을 도입하지 않은 결과다. 석탄 매출비중 각각 30%와 50%에 모든 정성기준이 도입되는 옵션 2와 옵션 3의 경우에는 2026년에도 석탄기업 투자액은 각각 1조원 대와 3조원 대가 유지된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든다. 석탄기업을 판단하는 정량기준으로 석탄 매출비중 20%는 왜 고려하지 않았고, 탈석탄 선언을 형해화(形骸化)시켜 버리는 50%를 왜 굳이 포함시켰냐는 점이다. 석탄 매출비중 49%는 석탄기업이 아니라고 면죄부를 주는 이 황당한 지표 강도를 누가 납득하겠는가. 50%는 선택지로서 무의미한 명백한 그린워싱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참조되는 글로벌 탈석탄 리스트(Global Coal Exit List)에서의 석탄기업 기준은 20%다. 물론 20%로 설정할 경우 더 많은 기업이 석탄기업으로 규정되고 이에 따른 국민연금의 투자제한에 대한 부담도 커진다. 하지만 기후위기 가속화에 따라 자본할당 주체인 금융기관들은 지금보다 더 강한 '기후행동'을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20%를 선택지에서 원천 배제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옵션 1과 옵션 2가 남는다. 필자는 정성기준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옵션 2는 정성기준인 '에너지 전환 계획 명시 기업 투자허용 여부'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기준은 기업이 자체적으로 수립한 에너지 전환 계획, 또는 정부 정책에 따른 에너지 전환 계획상 향후 정량기준(30%) 충족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에 기존 투자를 유지하거나 조건부 신규 투자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 전환 계획 명시 기업 투자허용 여부'의 기준이 중요하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의 마지노선인 1.5도 이하 목표에 부합하는 계획인지, 즉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0년까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 45% 이상 감축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행 수단을 제시하고 있는지 등 얼마나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느냐가 핵심이다. 강력한 기업 관여활동 진행도 전제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옵션 2 역시 그린워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는 사실 국민연금이 지표 강도 20%에 강한 '에너지 전환 계획' 등의 정성기준을 도입하기를 바란다. 탈탄소로의 대전환 시대에 투자대상 전체 기업들의 체질을 빠르게 개선시켜 기후 경쟁력을 높여야 국민연금도 장기적이고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석탄투자 제한전략'은 국민연금의 ESG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진정성을 판단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 그린워싱을 배제한 담대한 배제전략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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