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폰 뱅크런' SVB 사태와 예금보호 한도
[데스크 칼럼] '폰 뱅크런' SVB 사태와 예금보호 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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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미국 내 16위 규모의 SVB가 자금난 속에 초고속으로 파산했다. 과거 은행 창구로 달려가 예금을 인출하던 '뱅크런'과 달리, 손쉽게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예금 인출이 가능해진 것도 위기를 부채질했다. 

첫 위기 소식이 전파된 지 불과 36시간 만에 SVB 고객들이 420억 달러(약 55조원)의 예금을 인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 금융 시대엔 밤낮은 물론, 휴일이 따로 없어 이런 위기가 언제 불어닥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처럼 SVB 파산으로 '폰 뱅크런'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서도 예금보호 한도 상향 논의가 또다시 공론화했다. 22년째 묶여있는 '5000만원 한도'를 우리 경제의 규모와 위상에 걸맞게 높이자는 것이 골자다. 

예금보호 한도가 묶여있는 동안 국내 총생산(GDP)과 금융자산 규모는 각각 3, 4배씩 커졌다. 실제로 미국(25만달러·약 3억3000만원), 유럽연합(10만달러·약 1억4000만원), 일본(1000만엔·약 1억원) 등과 비교했을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아직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반대 주장이나 논거도 그만큼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득 지난 2009년 5만원권 지폐 도입 당시 팽팽했던 찬반 양론이 데자뷰처럼 떠오른다.

먼저 금융사와 금융소비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예금보호 한도를 늘릴 경우 금융회사의 건전성 등을 따져 보지도 않고, 높은 금리만 좇는 '묻지마식 예금' 행렬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금융사 역시 이런 점을 역이용해 '선 넘는 이사장사'에 목 맬 수도 있다. 이는 은행에 비해 금리는 높지만 리스크가 큰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일부 고액 금융자산가만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지난 22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부보예금(예금보험제도 적용을 받는 예금)가운데 5000만원 이하 예금자 수 비율은 전체의 98.1%를 차지한다.

국내 금융사에 돈을 맡긴 대부분의 고객들이 현행 예금보호 한도 내에 있기 때문에 급격한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예금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예금보호 한도 상향에 따른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고 그 부담은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 예금보호 한도를 상향할 경우 금융사로부터 받는 예금보험공사의 보험료가 올라가게 되는데, 금융사들이 그 부담을 예적금 금리를 깎는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금융 시스템 리스크 측면만 생각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금융위기가 찾아와 뱅크런 조짐이 있을 때 상향된 예금보호 한도가 완충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서다. 

윤창현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부보예금 중 예금자보호법으로 보호받는 자금의 비중은 51.9%에 불과하다. 5000만원 이상으로 예금보호를 받지 못하는 2%가 전체 예금액의 48%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머릿수는 적지만 고액의 뭉칫돈을 맡긴 고액 예금주가 전체 예금액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위기 시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부터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 10명은 지난 20일 예금자 보호를 위한 보험금 지급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내용을 담은 예금자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예금 보험금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중이다.

코로나 펜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전례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세계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외부 상황 변화에 극도로 취약할 수 밖에 없다. 

SVB사태가 던진 교훈은 한 은행의 문제가 다른 금융시스템 혹은 다른 국가 등으로 쉽게 전이된다는 점이다. 금융 소비자들의 불안과 공포가 삽시간에 퍼지기 때문이다. 또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가늠조차 힘들다.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 터널의 초입에 위치해 있다는 진단이 많다. '블랙스완'(예상하기 어렵지만 영향력이 큰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전반을 보다 철저히 점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신뢰를 버팀목으로 하는 금융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는데 엄청난 비용과 희생이 뒤따른다. SVB사태는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다. 쪼개기 예금 가입 등이 예상되는 만큼 예금보호 한도 확대를 포함한 금융 현안들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꼼꼼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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