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부메랑, 100조 예금전쟁···금융권 '속앓이 중'
레고랜드 부메랑, 100조 예금전쟁···금융권 '속앓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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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2금융권, 연 4~5%대 고금리 예금 판매
조달 비용 부담 증가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
당국 '경쟁 자제' 당부에도 고금리 이어질듯
사진=서울파이낸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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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 전 금융권이 뛰어들었던 '수신경쟁'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만기가 돌아오는 고금리 예·적금 규모만 100조원에 달한다.

은행을 포함한 전 금융권의 예·적금 금리가 연 4~5%를 넘어선 상황에서 재예치를 위한 수신경쟁이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금융사들은 경기침체, 연체율 상승 등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자금조달 비용마저 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1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가 벌어진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의 금융권 수신 증가액은 약 96조원이다. 만기 1~2년짜리 은행 정기예금 증가액과 저축은행, 신협,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 수신증가액을 합산한 규모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단기자금시장이 경색, 채권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금융사들이 연 5%대 고금리 예·적금 상품을 앞다퉈 팔았던 만큼 당시부터 늘어난 수신잔액은 대부분 고금리 수신상품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약 100조원에 달하는 고금리 예금상품의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예금자들은 통상 만기 1년짜리 예금상품에 가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은행은 물론 자금확보가 시급한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 금융사들도 만기 예금을 재예치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국내 금융사들은 앞다퉈 예금금리를 올리는 추세다. 5대 시중은행의 1년만기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모두 연 4%를 넘어섰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과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 NH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의 금리가 최고 연 4.05%로 가장 높았고,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과 하나은행의 '하나의정기예금' 금리가 연 4.0%로 뒤를 이었다. 이들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올해 2분기만 해도 연 3.5%를 밑돌았다.

전체 17개 은행으로 넓혀보면 SC제일은행의 'e-그린세이브예금' 금리가 1년만기 기준 최고 연 4.35%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전북은행 'JB123 정기예금'의 금리가 연 4.30%, DGB대구은행의 'DGB주거래우대예금'·'DGB함께예금'의 금리가 연 4.25%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연 3%후반대~4%초반대 금리의 정기예금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금리인상을 통한 수신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날 기준 79개 저축은행 1년만기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연 4.24%로 집계됐다. 가장 높은 금리를 제시한 곳은 조은저축은행으로 연 4.65% 금리의 'SB톡톡 정기예금(특판한도)' 상품이 대상이다. 이는 올해 2월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금리다.

저축은행 대부분은 현재 연 4%중반대 금리의 정기예금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날 기준 연 4.5% 이상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 정기예금 상품(1년만기)은 총 59개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블저축은행의 '정기예금(인터넷뱅킹·스마트뱅킹)'이 연 4.61%를, CK저축은행 '정기예금(인터넷·모바일·비대면)'과 동양저축은행 '정기예금(비대면·인터넷뱅킹·스마트폰뱅킹)', 머스트삼일저축은행 'e-정기예금·비대면정기예금'이 연 4.60%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새마을금고 일부 지역 금고에서 연 9%대 특판 적금을 판매했다가 하루 만에 소진되는 일도 있었다. 강원도 소재 꿈드림새마을금고는 지난 16일부터 연 9%의 '구구(99)적금'을 판매했다. 해당 상품은 대면으로만 가입이 가능했음에도 판매 하루 만에 한도가 소진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신협도 최근 금리가 연 5%에 육박하는 상품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같은 업권 내에서는 물론, 업권 간 수신경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사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수신금리 인상은 조달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대마진 축소에 따른 수익성 둔화, 경기침체에 따른 연체율 상승 등 금융사들의 경영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조달비용 부담마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한 은행권에 비해 제2금융권의 고민이 크다. 충분한 자금확보가 중요한 금융사로서는 예금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막대한 비용부담에도 예금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권 수신확보 경쟁 심화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은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시장 현안 점검·소통회의'를 주재한 뒤 은행 LCR규제 정상화 조치 연장, 은행채 발행 탄력적 조절, 퇴직연금 납입 분산 유도 등의 조치를 결정했다. 은행들의 자금조달 수단을 늘려주는 동시에 자금을 급하게 확충하지 않아도 괜찮을 규제환경을 마련해준 것이다.

당국의 이러한 조치에도 긴축 장기화로 시장금리가 치솟고 있는 만큼 당분간 금융권 전반의 예금금리 인상 흐름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다. 기존 예금고객을 빼앗기지 않는 게 현재 금융사들의 주요 목표인 만큼 '울며 겨자먹기'로 고금리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자금조달 숨통을 터줬고, 과도한 수신경쟁을 자제해달란 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무리한 특판을 진행하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시중에 풀린 자금을 끌어오는 것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기존 수신고객을 빼앗기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금리수준을 더 낮추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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