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과대 광고' 이어 수백억 과징금 부과 위기
"공정위, 산업별 정책 생태계 고려해야" 지적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정부 부처의 행정지도를 따르던 이동통신 3사가 거액의 과징금을 물어낼 위기에 놓였다. 일각에서는 정부 부처 간의 소관법 싸움에 통신산업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이동통신사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가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을 담합했다는 의혹에 대해 본격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통신 3사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각 통신사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공소장 격으로 조사 대상의 법 위반 혐의와 과정 등이 담겼다.
업계는 담합 의혹 행위가 이뤄진 기간을 고려하면 공정위 제재 수위에 따라 이들 통신사에 많게는 수백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신 3사는 지난 2015년부터 약 8년 간 판매장려금을 비슷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 번호이동 실적 정보 등을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판매장려금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자사 할인율을 높이기 위해 대리점 등 유통점에 제공하는 일종의 판매수당으로, 유통망 추가지원금과 달리 법적 한도가 없다.
이 때문에 방송통산위원회는 지난 2014년 판매장려금을 30만원 이하로 지급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이 이상의 판매장려금이 지급될 경우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유통구조개선법)이 허용하는 15% 유통망 추가지원금을 넘는 불법 보조금으로 유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정위는 운영 과정에서 방통위의 행정지도를 넘어선 자율적 담합행위가 있었다며, 영업정보를 교환해 기업 수익성을 제고한 행위는 적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24일 전체회의 직후 공정위의 심사보고서에 대해 검토하고 향후 대응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시장 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지도 차원에서 내린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인데, 공정위 측은 공정하지 못한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이라며 "양 부처 간 입장이 조율되지 않고 대립각을 세우며 시장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는 "사업자가 이해관계를 이유로 정부의 취지를 확대 해석해 담합 등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단통법이라는 법 자체가 경쟁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갖고 있음에도 경쟁 제한을 이유로 제재에 나서는 것"이라며 "법과 현실의 분명한 괴리가 있는데도 사안 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법을 집행하겠다는 데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와 정부 부처 간의 엇갈린 법령 해석으로 통신업계가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할 위기에 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통신 3사가 5G 속도를 거짓 과장하거나 기만적으로 광고했다는 이유로 △SKT 168억2900만원 △KT 139억3100만원 △LG유플러스 28억5000만원 등 총 336억원의 과징금과 시정·공표 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통신3사의 5G 평균 속도가 초당 656~801메가비트(Mbps)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최고속도 초당 20기가비트(Gbps)',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 '2GB 영화 한 편을 1초 만에 다운로드' 등 실제 사용환경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5G 기술표준 상 목표속도를 실제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한 점을 지적했다.
이에 통신3사는 5G 요금제 안내 포스터, 홈페이지 등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침에 따라 '이론상 속도'라 표기했다고 반박하며 같은해 9월 시정명령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당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공정위가 본인들의 법을 가지고만 판단하고 있어, 과기정통부와의 판단 사이에 간극이 있다"며 "재판 과정에서 과기정통부 측으로 자문 요청이 온다면 응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통신업계를 향한 제재를 쏟아내는 것에 대해 산업별 정책 생태계를 고려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공정위가 근거하는 일반 경쟁법은 일반적인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단통법은 특별한 규제 수요로 제정된 특별법 우선해야 하는 구조"며 "지난해 공정위가 과기부의 지침을 따라온 통신사에 과대광고로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는데, 정책 생태계가 어떻게 구축되고 작동하는 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