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깜깜이' 가산금리와 '도돌이표' 공개 압박
[기자수첩] '깜깜이' 가산금리와 '도돌이표' 공개 압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감원 검사로 드러난 대규모 '대출금리 조작사건'
당국 금리 합리화 약속 '지지부진'···정치권도 나서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6년 전 이즈음, 은행들의 '대출 가산금리 조작'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그해 2~5월 3개월간 국내 은행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하나·씨티·경남은행 등에서 가산금리를 조작해 부당하게 대출금리를 산정해온 사실을 적발한 것이다.

국내 대형은행이 연루된 데다 특정 은행에서만 금리조작 사례가 1만건이 넘었던 탓에 충격은 상당했다. 주요 시중은행을 대상으로만 실시했던 검사는 지방은행, 특수은행 등 전 은행으로 확대됐고 정치권에서도 나서 관련 은행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 구조로 결정된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들은 가산금리 산정 과정에서 대출자의 소득을 누락하거나 축소했다. 통상 차주의 소득이 많을수록 상환 능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돼 가산금리가 낮아지는데, 당시 은행들이 이 가산금리를 낮추고자 내부 전산에 차주의 소득을 적게 입력한 것이다.

담보가 있었음에도 없는 것처럼 꾸민 사례와 경기가 좋아졌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불황기를 가정한 신용프리미엄을 고정적으로 적용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신용등급이 올라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한 차주에 대해 우대금리를 줄여 기존 대출금리를 그대로 유지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통해 은행들이 고객에게서 더 받아낸 이자액만 약 27억원에 달했다. 해당 은행들은 단순 전산입력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당국은 조작 사례가 워낙 많고 조직적이었던 탓에 고의성이 있었을 것으로 봤다. 당시 은행들은 부당 수취한 대출이자에 대해 부랴부랴 환급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금감원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은행들의 '깜깜이 가산금리' 산정 체계를 두고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가산금리는 인건비, 위험관리, 목표이익률, 보증기관 출연료, 예금보험료, 교육세 등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종합 고려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산정한다.

문제는 이 가산금리 산정 체계가 은행의 '영업 비밀'에 해당되기 때문에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탓에 은행별 가산금리가 최고 6%p(포인트) 가까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이유를 차주들은 명확히 알기가 어려웠다.

대규모 금리조작 사건이 발생한 것도 이같은 '깜깜이 가산금리' 산정 체계에서 비롯됐다는 게 당시 금융당국의 판단이었다. 실제 금리조작 사건 이후 은행들의 가산금리 산정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커졌고 당국도 금리산정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여러차례 밝혔다.

이후 금리산정 체계 합리화를 위한 여러 제도들이 등장했다. 대출을 신규·갱신·연장하는 차주에게 의무적으로 대출금리 산정내역서를 제공하도록 했고, 지난 2022년 8월부터는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지나치게 높일 수 없도록 매월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비교 공시하도록 했다. 은행권도 지난해 마련한 자체 업권 모범규준을 통해 가산금리 산정 시 예보료, 지급준비 예치금 등 일부 항목을 제외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가산금리 산정 과정이 전부 공개되지 않은 탓에 금융소비자들의 불만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규모 금리조작 사건이 발생한지 6년이 흘렀음에도 '깜깜이 가산금리'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금융소비자들의 불만과 '찜찜함'을 해소하려면 결국 은행의 가산금리 산정 과정과 방식을 모두 공개해야 하지만, 이를 추진하기엔 금융당국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가산금리 산정 체계를 모두 공개한다는 것은 은행의 수익구조를 모두 보여준다는 의미다. 아무리 당국의 관리를 받는 은행이라지만, 민간 기업의 수익구조를 공개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데 대한 시장 왜곡 부작용과 업권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산금리 제도 합리화를 두고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가산금리 산정 시 교육세, 출연료 등 법적 비용을 제외하고, 가산금리 구성 항목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가산금리 체계를 놓고 이렇다 할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자 정치권이 나선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은행권의 속내는 복잡하다. 가산금리는 각종 비용, 마진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은행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를 공개할 경우 시장경제에 맞지 않다는 논리다. 은행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다만, 은행권은 정치권이 가산금리 체계를 손질하고 나서게 된 배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쏟아진 '이자장사' 비판을 생각하면, 금리조작 사건 이후 6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은 '금리제도 개선 여부'가 아니라 은행권이 잃어버린 신뢰는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