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 날려도 접는다···'패자'만 있는 사전 청약
수백억원 날려도 접는다···'패자'만 있는 사전 청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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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사전청약 취소 사례 올해 첫 등장···현재까지 6곳, 1500여 명 피해자 양산
공사비 급등해 사업성 악화한 탓···토지값도 올라 분양가 높여야하는데 리스크 커
건설사, 이자·계약 해지 위약금 등 수백억 손실···민간 사정이라며 '나몰라라' 정부
27일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연합)
27일 서울 시내의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을 위해 토지를 구입해놓고도 수익성 등을 이유로 사업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사전 청약이 진행됐던 사업장에서는 올해만 6번째 사업취소가 나오면서 수분양자들의 피해도 늘고 있다. 갑작스레 사업 취소를 통보해야 하는 건설사들은 난감해하면서도, 자신들 역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 중구 중산동에 공급 예정이었던 '영종 A41블록 한신더휴' 건설 사업이 이달 사전 청약 시행 2년 만에 전면 취소됐다. 해당 사업은 지하 2층∼지상 20층짜리 7개동, 전용 84㎡ 440가구를 짓는 것으로, 2022년 8월 375가구에 대해 사전 청약을 진행한 바 있다. 입주는 내년 6월 예정이었다.

앞서 이 사업 시공사 한신공영은 해당 사업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토지를 매입하기로 계약했으나, 잔금 납부를 하지 않으면서 연체됐고 결국 LH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한신공영 관계자는 "수년 전 한창 땅값이 오르기 시작할 때 이 계약을 했는데, 현재 분양 경기는 그때보다 떨어졌고 땅값은 반대로 올랐다"며 "분양가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토지비로 결국 분양가를 높게 받아야 하는데, 분양가 상한제 규제와 현 분양 시장을 고려했을 때 사업성이 맞지 않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민간 사전청약 취소 사례는 올해 처음 등장해 현재까지 총 6곳으로 늘었다. △경기 파주 운정3지구 △인천 가정2지구 △경남 밀양 △경기 화성시 동탄 등에서 사업이 취소되며 총 1500여 명의 사전 청약 당첨 피해자가 양산됐다. 당첨자들은 그동안 무주택·1주택 자격 등을 유지해가며 다른 청약이나 매수 기회를 포기했기에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현재 사전청약 단지 중 본청약이 미뤄지고 있는 곳이 많아 피해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건설업계는 이 같은 사업 취소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시행·시공사 역시 사업 포기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최근 한 아파트 건축 사업을 포기한 건설사의 관계자는 "LH로부터 토지 매입 후 수년간 이 사업에 공을 들였으나 해당 지역의 미분양이 쌓이면서 분양 일정이 계속 밀렸고, 그 사이 내고 있던 대출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 주택 사업을 포기할 때마다 건설사는 일반적으로 수백억원의 손해를 보게 된다. 한 사례로 최근 동부건설은 지난 2021년 LH로부터 낙찰받은 '영종하늘도시'내 부지를 반납하고 사업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회사는 이 부지를 3025억원에 낙찰받으면서 이를 위해 3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분양 일정이 밀렸고, 회사는 유입된 분양 대금없이 최고 연 4.6%에 달하는 이자를 수년간 내야 했다. 단순 계산하면 이 부지 관련 월 이자만 11억5000만원(연 138억원)인데다가, 특히 대출금 중 절반은 올해 안에 갚아야 했다. 그러나 올해도 분양을 기약할 수 없게 되자 동부건설은 더 이상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 계약금 300억원과 함께 이 사업을 포기했다.

문제는 이 같은 피해 속출에도 정부는 민간의 사정이라며 손을 놓고 있어서다. 현재 사전청약 제도는 효과가 미흡하단 이유로 폐지됐으나, 정부는 민간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의 청약통장 효력을 살려주는 것 이외에 다른 구제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또 여러 건설사의 말을 종합해 보면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분양가 내 택지비 기준이 '토지 분양 당시 가격'으로 제한되면서, 토지 매입 후 땅값이 올랐지만 이를 분양가에 반영할 수 없어 사업이 늦어질수록 손해가 커졌다고 분석이다. 이는 민간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공공이 주택을 공급할 땐 택지비 산정 기준이 '분양 당시 감정평가액'으로 정해져 차별 논란을 낳는다.

아울러 LH와의 계약적 불균형 문제도 언급됐다. 회사들이 LH로부터 낙찰받은 토지들은 대부분 주택 경기가 좋았던 수년 전이다. 이는 경쟁입찰방식으로 가장 높은 가격을 써 낸 입찰자가 낙찰받는데, 때문에 건설사들은 당시 일반적으로 시세 대비 높은 가격에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LH와 맺는 토지 계약은 낙찰 후 땅값이 오르면 시세 차익을 보는 구조가 아니다. 결국 사업성이 악화해 택지를 반환하면 LH는 계약금(공급가액의 10%)와 가산금리가 붙은 위약금마저 받아간다.

이 관계자는 "최근 늘어나는 토지 계약 해지는 건설 경기 침체란 외부 상황에 따른 것으로 귀책사유가 매수자에게 있다고 볼 수 없다"며 "LH는 토지 매각 사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주택 보급 의무도 가지고 있는데, 영세한 중소 건설사가 수백억원 손해 보면서 사업을 포기하더라도 '해당 토지를 다른 건설사에 다시 팔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LH 측은 "LH에 유리하게 계약이 됐다는 주장이 일부 있었지만 계약보증금에 상응하는 금액을 위약금으로 몰취하는 것은 부동산 계약의 일반적인 사항"이라며 "해당 토지 계약해제의 귀책사유는 건설사에 있고, 대금을 연체한다고 바로 계약 해지 통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매수자의 계약 이행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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