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47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날 한국 대통령실은 바이든대통령과의 회담 의지가 확고하다는 발표를 내놨다. 당선자와의 전화통화 소식은 나오지 않고 임기 끝나는 대통령과의 회담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다는 것은 미국의 다음 정부와 척을 지겠다는 선전포고인지 아리송하다.
아니면 일본 기시다 전 총리 퇴임 확정 후 한국에 초청해 회담했듯이 국민 세금으로 외국 최고지도자들에 대한 송별회를 해주는 게 현 정부의 취미활동인가. 일본의 경우야 전임이든 후임이든 향후 한국의 외교에 큰 타격은 없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경우, 특히 바이든과 트럼프의 관계를 놓고 볼 때 국가적 손해를 불러일으킬 참사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당장 종식시키고 북한과의 대화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선거기간 중에도 강조해온 마당에 이미 현 정부가 던져놓은 잇단 말 폭탄만으로도 대미 외교에 우리의 약점을 쥐어준 현 정부다. 우크라이나에 참관단을 파견한다느니 북한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겠다느니 하는 황당한 주장을 이어 쏟아내며 바이든 정부의 친위대처럼 움직여온 한국 정부에 대한 트럼프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곱게 보고 말고가 그 자체로 한국에 직접적 피해를 주지는 못하겠지만 국제외교를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하는 트럼프에게는 적어도 협상에서 한국이 죄다 까발려진 카드만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일 가능성은 농후하다. 게다가 트럼프와 전화통화도 하지 않은(혹은 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토와의 관계가 어쩌니 하는 모양새는 아무리 봐도 대미 외교를 포기한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미국은 누가 뭐라 해도 작금 세계 모든 나라들이 외교 1순위로 꼽을 수밖에 없는 나라다. 그런 나라의 외교에 수시로 구멍을 내면 여러 면에서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마당에 임기 마무리에 들어선 현직 대통령과 회담을 하겠다는 게 대체 무슨 발상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나 국가는 없을 것이다.
외교라는 게 마음에 들면 친구 먹고 수틀리면 무시해도 좋은 어린 애들 놀이가 아니다. 그간 한물 간 이념 타령이나 하면서 주변에 온통 적을 늘리는 데 골몰하더라도 적어도 최우방국인 미국과의 외교에까지 철없는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외교무대에서 한 국가가 상대하는 것은 상대국의 자연인 아무개가 아니다. 또는 해당 국가의 어느 정파에 국한되어서도 안 된다.
미국에 민주당이 집권하든 공화당이 집권하든 한국 정부가 상대하는 것은 오직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여야 옳다. 물론 그들 사회에서도 나름의 갈등이 있고 부분적으로는 집권당의 지지기반에 따라 정책의 차이가 나타나고 그렇기에 우리의 외교도 그런 정책적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하고 국익에 최선이 될 외교 전략을 세워나갈 일이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의 당선으로 한국은 여러 곤란한 현안을 직면하게 됐다. 일단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겠다는 트럼프의 의지는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에서 한국을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시킬 위험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전쟁을 몹시 혐오한다고 주장하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 조기 종식을 위해 발 벗고 나설 경우 악화되는 무역수지 개선에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방산물자 수출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계속 주장해온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내산 무기 생산단가를 더 이상 낮추기 어려워짐에 따른 한국군 장비 수급에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성도 생각해둬야 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고 설레발을 쳐댄 통에 러시아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졌고 그 결과의 하나로 북러 상호방위조약을 허용하게 됐다. 그렇다고 북한이 위협이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서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자꾸 지분을 잃게 된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는 푸틴과도 대화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하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중국의 값싼 상품이 미국 시장을 점령하면서 자국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못 견디지만 어쨌든 미국이 마음껏 사업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돈 드는 전쟁 그만하자는 것이다.
그런 트럼프 정부와는 시작도 전에 틀어질 일만 만들고 있으니 걱정 만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