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위기의식 반영···"인사·조직개편으로 쇄신 메시지 전한 것"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삼성전자와 주요 계열사의 인사·조직개편이 진행 중인 가운데 경영전략과 관련된 두 조직이 신설돼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들 조직에는 삼성전자 내 '전략통'으로 통하는 핵심인사들이 내정되면서 삼성전자가 경영 혁신과 구조조정을 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28일 삼성글로벌리서치는 사장급 조직인 경영진단실을 신설하고 실장으로 최윤호(61)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을 위촉했다고 밝혔다. 삼성글로벌리서치는 1991년 삼성경제연구소로 설립됐으며 시장경제와 기업경제 분야의 민간 연구기관 역할을 해왔다.
삼성글로벌리서치는 이번에 신설한 경영진단실에 대해 "관계사의 요청에 의해 경영·조직·업무 프로세스 등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 도출을 지원하는 전문 컨설팅 조직"이라며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관계사의 사업경쟁력 제고와 경영 건전성 확보 임무를 수행하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기관에서 경영·조직·업무 프로세스 등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 도출을 지원하는 부서를 신설한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에서 '진단'이라는 명칭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 같은 명칭은 구조조정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27일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는 DS부문에 경영전략담당을 신설하고 김용관(61) 사업지원TF 반도체 지원담당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임명했다. 삼성전자는 김 사장을 임명한 이유로 "반도체 경영전략담당으로 전진배치돼 풍부한 사업운영 경험을 활용해 DS부문의 새로운 도약과 반도체 경쟁력 조기회복에 앞장 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룹 전반을 아우르는 경영진단실과 핵심 사업인 반도체를 전담하는 경영전략담당이 신설되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컨트롤타워의 재건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 부서를 책임지는 최윤호 사장과 김용관 사장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등 그룹 내 주요 컨트롤타워를 거친 인물이다.
최 사장은 198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0년부터 미래전략실 전략1팀 담당임원으로 재직했고 2017년 미전실 해체 이후에는 사업지원T/F로 자리를 옮겼다. 사업지원T/F에서 부사장까지 승진한 최 사장은 2020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으로 근무하다 2021년부터 삼성SDI 대표이사를 맡았다.
삼성SDI는 최 사장 취임 2년차인 2022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전기차 캐즘 영향으로 실적이 다소 둔화되는 시기였으나 고급형 배터리 판매 전략을 펴면서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현대차그룹과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고 2026년부터 2032년까지 현대차의 차세대 유럽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김 사장 역시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전략기획실에서 2003년부터 근무했다. 이어 2007년부터 미래전략실에서 전략1팀과 경영진단팀, 전략팀 등을 두루 거쳤다. 2017년부터는 삼성전자의 의료기기사업부로 자리를 옮겼으며 2020년에는 의료기기사업부장 겸 삼성메디슨 대표이사로 재직하다 올해 5월 삼성전자 사업지원T/F로 복귀했다.
김 사장은 삼성메디슨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영상 진단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프랑스 AI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하면서 의료용 AI 솔루션의 고도화를 꾀했다.
재계에서는 이들 '전략통'이 그룹과 반도체 핵심부서에 배치된 것을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 직전인 지난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위기 극복의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이 회장은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는 근본적인 위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어려움도 삼성은 이겨낼 것이라고 격려해 주기도 한다"며 "이렇게 많은 분들의 걱정과 응원을 접하면서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또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녹록 않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 부디 저의 소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위기설이 꾸준히 제기된 만큼 회사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쇄신 메시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이 회장의 등기이사 재선임과 컨트롤타워 부활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신설조직이 이 같은 쇄신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와 주요 관계사는 이르면 이달 중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