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공사비에 분양가 상승 압박까지
"현실적 여건·전제조건 고려해 유예 필요"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고금리 기조 속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오르며 공사비가 날로 치솟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상승 폭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아파트도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받도록 하면서다. 친환경 자재 사용 등을 이유로 건축비가 오르는 만큼 분양가도 상승 압박을 받아 건설업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내년부터 30가구 이상 민간 아파트에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이 의무화된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로,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뉜다.
공공분양 아파트나 임대 아파트는 이미 지난해부터 5등급(에너지 자립률 20~40%) 인증이 의무화됐다. 민간 아파트는 건설경기 악화 등의 이유로 올해까지 1년 유예가 됐고 내년부터 이를 적용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성능 강화시 공사비는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 기준 약 130만원이 추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가 예상하는 공사비 인상 폭은 이보다 훨씬 크다. 대한건축학회가 공공건물 50여개의 공사비 세부내역서를 조사한 결과 5등급을 충족하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지을 때의 공사비는 기존 대비 26~35%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 1등급 인증을 위해서는 기존 공사비의 2배에 달하는 공사비 투입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선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이 본격화되면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9월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사업 지연 등의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내놓은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도 실효성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29.71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2% 올랐다. 2020년 평균 100대를 유지하던 공사비지수는 지난해 평균 127.9까지 껑충 뛰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인상률은 8.5%다.
A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제로에너지 주택 기술 자체가 패시브 기술로 창호 하나도 이중창호를 쓰고 단열재도 고급 단열재로 단열 효과를 높이는 등 에너지를 덜 쓰도록 하는 기술이 적용되는 만큼 당연히 공사비가 상승할 수 밖에 없다"면서 "제도 적용에 맞춰 준비를 오래하고 기술 개발을 해 온 대형사들은 좀 나을텐데 오롯이 비용으로 기준을 맞춰야 하는 중소업체들의 경우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B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선두기업들이 제로에너지 주택 콘셉트를 이끌어가면 주택 건설업계도 저변화할 순 있지만 당장 친환경 자재와 기술들이 상용화돼 가격 안정화됐냐고 하면 미지수"라면서 "제로에너지 주택 사업이 현재 기술 개발되는 과정인데 이미 상용화된 자재와 기술에서 더 나아가 추가적인 신기술이나 새로운 품질을 도입할 경우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특히 공사비 인상에 따른 분양가 상승 압박이 거세진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올해 분양가는 꾸준히 상승했다. 서울의 경우 9월 말 기준 아파트 3.3㎡당 분양가(공급면적 기준)가 4424만1000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38% 치솟은 가격이다. 기존 최고치였던 7월 4401만7000원보다 22만4000원 상승했다.
C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가 올라가면 분양가도 올라가서 분양이 어려워지고 사업 진행이 지연될 수 있으며 관련 리스크도 많아질 수 있다"면서 "분양가가 더 올라간다고 하면 사업성이 떨어지게 되는데 원가 상승에 규제도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 모든 부담을 건설사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려움이 가중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경기 불황 속에 공사비‧분양가 상승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이에 따라 한시적인 유예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에너지 생산시설 설치와 부지 확보 등 부가적인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30세대 이상 예정된대로 의무화가 진행된다면 거의 모든 주택이 5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비용 증가 영향이 클 것"이라며 "현재 민간에는 제로에너지 주택 보급률이 거의 없고 기술 도입을 해보지 않은 업체도 다수이기 때문에 준비가 안 됐다고 본다. 여기에 공사비 급등 상황을 고려해 기간을 늦추는 게 좋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특허를 가진 에너지저감 기술의 80~90%가 자영업자나 영세업체들로 원활한 기술 거래와 기술 활용 과정에서 여건이 마련돼야 하고 현재 명시된 기술 인증 범위 등 인증 제도가 폭넓지 않으므로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런 전제조건이 확보된 가운데 경기 여건을 고려해 제도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