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송윤주기자] 얼마 전 취재 중에 만난 업계 한 관계자의 말을 곱씹어 본다. "현대·기아차가 자동차 세계 5위라고 하는데, 품질이나 브랜드 파워로도 그 정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판매만 채운 허울 좋은 수식일 뿐이죠"
지난해 정몽구 회장은 글로벌 판매 '800만대'라는 목표를 제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것도 연말을 고작 한달여 앞둔 11월 말에 내려진 특명이었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12월 한달 동안 월 평균 판매량보다 훨씬 더 팔아야 했기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실패를 점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대규모 판촉 활동으로 결국 판매를 800만대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도요타와 폭스바겐, GM, 르노 닛산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세운 기록이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판매와 매출 측면에서는 신기록을 세웠지만 수익성은 되레 악화됐다.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7.5%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은 7.6% 줄었다. 판매관리비 지출이 늘면서 영업이익률도 8%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지난 한 해 동안의 영업이익 역시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외형 키우기에는 반짝 성공했을지 몰라도 국내외 면면을 살펴보면 사정은 그리 좋지 못하다. 내수 시장에서는 15년 만에 점유율 70%대가 깨졌고, 수입차와 국내 완성차업체는 경쟁력을 높여 갈수록 더 목을 조여오고 있다. 주력 시장으로 꼽던 북미와 점유율을 위협받으며 신흥시장에서 탈출구를 찾는 모양새다.
그 탓인지 최근 정몽구 회장의 주마가편(走馬加鞭)식 경영 스타일도 방향을 튼 듯하다. 올해 현대차의 글로벌 판매 목표는 505만대다. 지난해보다 겨우 1.8% 많은 수치다. 통상 판매 목표를 시장 전망보다 보수적으로 잡곤 한다지만 그 정도가 눈에 띌 정도다. 그나마 기아차가 전년보다 3.6% 늘어난 315만대를 판매하겠다고 제시했으나 지난해 목표 성장률 4.7%에는 못 미친다.
올해는 '양보다 질'이라며 내실을 다진다는 것이 현대·기아차의 전략이다. '1000만대 클럽', '글로벌 4위 진입'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두고, 숨을 고를 때가 됐다. 2020년까지 전 차종에 친환경 모델 확대, 81조원의 대규모 투자 등 미래 성장을 위한 큼직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현대·기아차가 양적 성장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