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도 역대급 가계빚···당국, 가계부채 관리 주문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은행들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대출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고금리 상황에서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대출 문턱 높이기에 나선 것이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 조치를 시행하는 것은 지난 2021년 말 총량규제 이후 약 2년 만으로,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주문에 따라 대출받기가 보다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최근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전세자금대출 등 일부 가계대출 상품에 한도를 설정하는 등 대출 취급기준을 강화했다.
신한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다주택자가 생활안정자금 목적으로 주담대를 신청할 경우 최대 2억원까지만 빌려주도록 한도를 설정했다. 현재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상한만 넘지 않으면 별도 한도를 두지 않고 있다.
연립·빌라·다세대 대상 모기지신용보험(MCI) 대출(플러스모기지론)과 주거용 오피스텔 대상 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TOPS부동산대출)도 중단한다.
MCI·MCG는 주담대를 받을 때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이다. 은행은 주담대 차주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를 대비해 소액임차보증금(최우선변제권 보장금액)을 대출한도에서 차감한다. 이 때 차주가 MCI·MCG 보험에 가입한다면 해당 금액 만큼의 대출금을 더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MCI·MCG 가입이 중단된 신한은행에서 해당 대출을 받으려는 차주라면 소액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다. 지역에 따라 2500만~5500만원의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셈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계대출의 관리를 강화하고 적정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 신규 주택담보대출 취급기준을 선제적으로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4일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 취급 기준을 강화했다. 주담대의 경우 다주택자 생활안정자금 대출한도를 최대 2억원으로 설정했다. 해당 기준은 세대원 포함 2주택 이상 보유 차주에게 적용된다. 다만, 전세자금 반환 목적의 생활안정자금 대출은 가능하다.
우리은행 역시 주거용 오피스텔 등 주담대 보증보험(MCI·MCG)의 가입을 중단했다. 또 전세대출 중 소유권 이전 조건의 대출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집단대출 승인 사업지를 포함한 신규 분양물건의 소유권 보전 또는 이전 조건으로 대출을 받는 게 불가능해졌다. 선순위 근저당권 말소 또는 감액, 신탁등기 말소 등을 조건으로 한 대출 취급도 제한했다.
이 밖에 다른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두 은행의 대출취급 요건 강화 여파를 주시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는 배경에는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은 가계부채가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3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국내 가계신용 잔액은 1875조6000억원으로 전분기 말보다 14조3000억원(0.8%) 증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주담대가 17조3000억원 늘면서 전체 가계부채 증가세를 견인했다.
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 증가세는 4분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24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7조9724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1조9605억원 늘었는데, 이 기간 주담대만 3조3943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21년 10월 3조7988억원 이후 2년 여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2021년 하반기는 부동산가격 급등으로 5대 은행에서만 가계부채가 월 4조원 가까이 늘던 시기다. 당시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안정화를 위해 대출 총량규제를 도입했고, 은행들은 주담대 등 가계대출 취급을 일괄 중단했다.
이후 2022년 들어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안정화됐고 은행들도 대출 취급 중단 조치를 해제했다. 그러나 올해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부동산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가계대출이 다시 불어나고 있다. 5대 은행에서 주담대는 7월 1조4868억원, 8월 2조1122억원, 9월 2조8591억원, 10월 3조3676억원 등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은행권에선 대출취급 요건이 더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강화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17개 은행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차주 상환능력에 대한 노력뿐 아니라 거시건전성 측면에서 가계부채 적정 규모에 대한 고민을 해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2년 전 총량규제로 가계대출을 중단했을 때에도, 시장 충격을 고려해 일괄 중단하기보다 MCI·MCG대출을 먼저 중단한 후 다른 상품으로 넓혀 나가는 방식이었다"며 "대출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금리 인상인데, 이는 상생금융 때문에 불가능한 만큼 대출요건을 추가로 강화하는 걸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2년 전 시장에 극심한 혼란을 불러왔던 대출 총량규제와 일괄적인 대출중단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금융당국도 총량규제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앞서 지난 8일 금융위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가계부채 점검회의' 브리핑에서 당국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예년에 비해 그렇게 빠른 게 아닌 상황에서 은행별로 강제적으로 양적 관리를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