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단순 조립부터 시작···기술력 위해 연구소 설립
앞으로 친환경·무인 선박 등 기술력 중심 선박 증가 예상
[서울파이낸스 김수현 기자] 60년 전만 해도 기술력이 전무했던 우리나라의 조선 산업이 현재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조선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선 산업이 이러한 성장을 이루기까지 초석을 다지고 산업을 설계해 온 인물이 있다. 바로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이다.
동양인 최초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국제검사관으로 활약하던 신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름에 귀국하게 된다. 36세의 나이에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그는 한국 조선 산업을 기획하며,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으로 산업의 전환을 이루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 회장은 현재 93세의 나이에도 현업에서 활동하며, 70년 경력의 엔지니어의 우수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조선업의 아버지라 불리며 국내 조선 산업의 시작부터 함께한 신 회장을 24일 만났다.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경제수석의 자리에 올랐다. 어떤 마음이었나.
△ 이상한 세상을 살아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런던에서 조선 관계 국제기구에 있었다. 젊은 청년이 영국에 있다는 소문이 나자 군인들이 잡아와 바다와 관계되는 산업을 발전시키라는 책임을 맡겼다. 난데없이 조선 기술자가 청와대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 수석 비서관이라는 직함이 없었다.
당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인데 경제 전문가가 맡아도 해결될까 말까했다. 조선 기술자에게 맡긴다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다. 국민이 비웃고 세계도 비웃는다고, 나는 못한다고 했다. 그러자 실장이 대통령이 한 결정이기에 대통령한테 불평하라고 했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대통령 집무실에 찾아가 똑같이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지금 대한민국이 이렇게 가난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냐, 경제 전문가들 부르고 기업인들 부르고 사회 지도자들 불러도 다 좋은 얘기를 하더라.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고용을 증대해야 된다, 환율을 안정시켜야 된다 하더라. 틀린 말은 아닌데 국민들이 당장 굶어죽는데 쌀이 없고, 비료가 없고, 공장이 없다. 내가 총 가지고 혁명했다고 돈이 필요한데 외국인들이 고개를 돌리고 상대를 안 한다. 공장을 설계할 기술자도 없고 운영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다. 이런 판국에 경제, 물가, 환율을 어떻게 하겠느냐. 지금 당장 공장 짓고 조선 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을 맡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국에 있는 당신을 불렀다. 당신은 외국에 대한 감각이 있고 영어도 하고 애국자인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 당신이 공장을 짓고 거기에 필요한 기술, 돈, 노하우를 끌어오는 일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혹 떼러 갔다가 붙이고 나온 격이었다. 그때 마음속으로는 '내가 대한민국 정부가 고용한 고급 거지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1년에 200일 이상 해외를 돌아다니며 돈 주세요, 기술 주세요 하며 거지노릇을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건설된 비료공장, 정유공장 등 관여하지 않은 것이 없다. 현재 조선사들의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다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당시 조선 산업의 상황은 어땠나
△1961년 9월에 납치당하다시피 해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됐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부산에 대한조선공사라고 국영기업체인 조선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만들어라고 했다. 이 조선소는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조선소인데 제법 규모가 있었지만 해방 이후 그냥 방치돼 있었다. 그래서 몇 년 만에 영국에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집에도 못 가고 군인들한테 들려부산으로 내려갔다.
가 봤더니 이건 조선소가 아니고 풀 바다였다. 풀은 무성하게 자랐고, 거기 있는 기계들은 다 녹슬어서 다 쓰러졌다. 국영기업체라지만 직원들은 정부가 돈이 없어서 지난 7개월 동안 월급을 한 판도 못 받았다고 했다. 그동안 녹슨 고철들 뜯어다가 국제시장에 갖다 팔아서 그걸로 쌀을 사며 연명했다고 한다. 그게 대한민국의 1961년 하반기에 조선산업의 모습이다.
군인들은 나보고 당신이 전문가니까 여기를 세계 제일의 조선소로 만들라고 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말이 안 되는 일이지. 그래서 내가 대한민국 조선 산업을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이 작업복 입고 낫으로 풀을 베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조선 산업이 30년 만에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됐다.
- 당시 조선 산업이 왜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나?
△ 당시 세계 상황이 2차 대전 끝나서 경제가 어려웠던 만큼 선진국들조차 조선 산업에 투자를 못했다. 세계 경제는 점점 성장하고 국제간 교류도 왕성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가 일본에 있었는데 15톤 밖에 건조를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물건을 나르기 위해 30만톤 이상의 대형 선박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큰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전 세계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새로 시작하는 마당에 일본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세계에 없는 큰 초대형 조선소를 만들면 앞으로 발생하는 수요를 다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다른 산업은 처음부터 기술이 다 있어야 했는데 조선산업은 외국에서 엔진과 부품들을 사서 조립하면 됐다. 수천 가지의 부품과 기계를 조립하는 것이 당시 산업의 현실이었다. 조립은 우리나라에 노동력이 풍부하고 시작하기 쉬워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술력이 없는 채 조립에만 그치는 산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쥐고 앞으로 미래를 선도하는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래서 과학 기술 연구소 건립을 건의했다. 당시에는 어느 세월에 과학자들을 배출해낼 수 있겠냐며 반대가 심했다. 계속 외국 기술 사서 쓰고 카피해서 쓰자고 고집을 피웠다. 완강히 연구소 건립을 건의해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탄생하게 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없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깡통이었을 것이다. 키스트(KIST)와 카이스트(KAIST)를 만든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생각한다. 이 사업을 추진하며 100년이 걸리든 200년이 걸리든 우리만의 기술을 발전시켜 언젠가는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소회가 있다면
△ 경제 수석이라는 자리가 단순히 한 회사의 이사나 부장으로 취직된 게 아니다. '국가의 운명', '민족의 역사' 등의 단어들이 밀려와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나 나름의 개똥철학과 소망을 담아, 조선 발전 계획 차트를 그렸다. 차트를 따라 이런 식으로 하면 국가가 이렇게 발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당시 생각했던 미래가 지금 돌아봐 보면 거의 다 이뤄졌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발전한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이 2003년 명실공히 국제적으로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고 인정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수주를 많이 한 나라,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배 전부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배로 꼽혔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라 국제기구에서도 상을 많이 줘서 감개무량했다. 박정희라는 사람을 만나서 기회가 주어졌고, 그렇게 많은 반대에도 일할 수 있게 해줘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2003년 4월 21일,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여태껏 상 탄 것을 전부 싸서 국립묘지에 갔다. 엎드려서 '대통령께서 그렇게 원하시던 조선 입국, 과학 대국의 꿈 이뤄졌다'며, '나한테 그런 사명을 주시고 일할 수 있게 해줘서 영광이었다, 정말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내가 잘 살았다고 본다. 잘 살았다는 것이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산 게 아니라 이타심을 갖고 국가와 산업을 위해 내 나름대로 힘이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선 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성격이 강하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 초기 조선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으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설계부터 완공 과정까지 IT 첨단 산업과 연계됐으며, 건조 작업 중에서도 많은 부분이 자동화됐다. 앞으로는 친환경·무인 선박 등 기술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기때문에 우리나라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국내 수출 물자의 99.8%는 배를 통한 해운으로 무역으로 운송되고 있다.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물동량은 더 많아 질 것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조선 산업도 번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조선 산업이 나아갈 방향은 미래 지향적인 탈산소 탈탄소 선박, 자율 운항 선박으로 본다. 현재 30톤 선박 하나가 소나타급 자동차 2000대가 한꺼번에 뿜어내는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게 한 척도 아니고 수 백 척이 뿜어내니 대기가 오염되고 기후 변화가 유발된다. 이에 국제해사기구(IMO)에서 규제를 하기 시작했다. 이산화탄소가 안 나오는 기름을 쓰든지, 이산화탄소 나오는 걸 잡아서 활용을 하든지 배출량을 줄여라는 것. 이렇게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게 하며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탄소 중립이라는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노르웨이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과학자들하고 기술자들이 모여서 만든 이산화탄소 포집 활용 특허 기술이 눈에 띄었다. 그곳과 지난 한 15년 동안 서로 교신도 하고 만나기도 하며, 기술 개발에도 참여하고 학습했다. 이렇게 마지막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카본코리아의 회장직을 맡게 됐다. 대한민국 또한 '퍼스트 무버'로서 미래를 준비하며, 기술 개발에 앞장서 조선 산업의 기술 우위를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