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속 '건설 톱10' 도시정비 수주 '1조 클럽'
해외는 300억불 달성했지만 목표 달성 미지수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올 한 해 국내 건설업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원가 급증으로 기업 실적이 곤두박질치면서 '건설사 부도 건수 5년래 최대치', '상위 10개사 최고경영자(CEO) 역대급 물갈이' 등 매서운 한파가 불었다.
이처럼 어려운 업황 속에서 상반기 부진했던 도시 정비 수주실적이 하반기 들어 개선되면서 10대 건설사 모두 수주액 1조원 이상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해외 수주 역시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5년 연속 300억달러(43조4580억원) 이상의 수주액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으나 정부가 연초 목표한 400억달러(57조9360억원) 달성은 미지수로 남아 아쉬움을 남겼다.
◇ 30개 건설사 부도···불황에 '고용 한파'
올해는 건설사 부도 건수가 작년 대비 대폭 늘었던 한 해다. 특히 지방 소재의 중소 건설사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들어 12월 현재(24일 기준)까지 부도를 신고한 국내 건설업체 수는 총 30곳. 이는 지난해(21곳)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특히 이달 집계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간 기준 2019년(49곳)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부도 업체들은 주로 자금력과 경쟁력이 약한 지방 중소기업들로 조사됐다. 실제 서울(1곳)과 경기(4곳)를 제외하면 전체의 약 85%가 지방 업체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6곳으로 가장 많았고, 전남(4곳), 경남(3곳) 등이 뒤를 이었다.
건설업에 불어닥친 한파는 현장 근로자들에게까지 확산됐다. 업황 불황으로 시공현장이 줄자 현장 배정(일감)이 급감하게 된 것이다. 직업소개소 대표 A씨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옛날에는 2~3명이 투입됐다면 요새는 현장에서 자기가 일을 할 테니 일 잘하는 1명만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숙련자 한 명이 1.5인분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게 현재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1군 건설사도 '살얼음판'···10개社 중 7곳 수장 교체
건설경기 불황은 1군 대형사들도 피하지 못했다. 업황 악화와 원가 급증 영향으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사 중 대부분의 올해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하는 등 실적 성적표는 '부진'했다. 상황이 이렇자 10개사 중 7개사(△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는 새로운 인물을 CEO 자리에 앉히고 조직 쇄신에 나섰다.
우선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달 홍현성 대표 후임으로 주우정 부사장(기아자동차 재경본부장)을 사장으로 승진·내정했다. 주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기아자동차 창사 이래 최고 실적 달성에 기여한 핵심 인물이다.
HDC현대산업개발도 그룹 내 재무전문가 정경구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하면서 사장 승진 발령했다. 약 4년 만에 수장을 교체한 현대건설은 1970년생인 이한우 신임 대표 체제로 세대교체에 나섰다. 대우건설은 김보현 신임 대표이사 선임과 함께 조직 슬림화와 세대교체를 통해 책임경영 강화에 나섰다.
이밖에 △포스코이앤씨 △DL이앤씨 △SK에코플랜트 등 대형건설사들이 잇따라 수장을 교체했다. 대부분 업계 불황으로 인한 실적 악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2월 전중선 대표를 선임했으며, SK에코플랜트는 7월 김형근 대표를 선임했다.
DL이앤씨는 LG전자 출신 서영재 전 대표이사를 선임한 지 석 달 만인 지난 8월 박상신 주택사업본부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재선임했다. 서 대표의 선임 당시 DL이앤씨는 실적 악화를 이유로 마창민 전 대표이사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바 있다.
◇ 10개사 모두 '도시정비 1조 클럽'···수주킹은 현대
이처럼 불황이 이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올해 10대 건설사 모두 도시정비사업 수주액 1조원 이상을 달성하며 지난해 총수주액을 추월했다. 상반기에는 건설 원자잿값 인상에 따른 공사비 급등과 고금리 장기화 등의 여파로 실적이 부진했으나 하반기 들어 사업성 높은 사업지들이 잇따라 시공사를 선정하면서 수주고가 늘었다.
서울파이낸스가 집계한 결과, 올해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은 총 27조115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총수주액 20조496억원을 넘어선 액수다.
올해 상반기에는 공격적인 수주 행보를 펼친 포스코이앤씨와 전통적인 강자인 현대건설이 양강 체제를 구축하며 치열한 수주전을 벌였다. 하반기에는 삼성물산과 GS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등 알짜 정비사업을 잇달아 수주하며 수주고를 올렸다.
이에 따라 10대 건설사 모두 '1조 클럽'에 가입한 가운데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현대건설(6조612억원)이 수주액 1위를 달성했다. 포스코이앤씨가 4조7191억원으로 바짝 뒤를 쫓아 선두권을 형성했다.
최근 8331억원 규모 안양 운동장 동측 재개발 사업을 따낸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3조6398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GS건설(3조1097억원) △대우건설(2조9823억원) △롯데건설(1조6436억원) △HDC현대산업개발(1조3332억원) △SK에코플랜트(1조3073억원) △DL이앤씨(1조1809억원) △현대엔지니어링(1조1383억원)순을 기록했다.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도 사업성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선별 수주에 나선 건설업계의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각 건설사가 선별 수주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대부분 건설사가 올해에 이어 내년 역시 사업성이 있는 주요 입지를 위주로 선별 수주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5년 연속 300억달러 달성에도 남는 '아쉬움'
올해 초 국내 건설사들이 연이어 대형 해외 공사 수주에 성공하면서 연간 목표액인 400억달러(약 58조360억원) 달성이 무난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왔었다. 하지만 이후 공사비 상승,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신규 수주·발주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목표 달성이 사실상 무산됐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인한 대외 신뢰도 저하 등 부정적 상황이 계속되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해외건설협회가 최근 발표한 '해외 건설 월간 수주 통계'를 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액은 326억9352만달러(약 47조4416억원)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277억3739만달러) 대비 17.8% 증가했으며, 2020년(351억달러) 이래 5년 연속 연간 300억달러를 넘겼다. 1~11월 수주액만 놓고 본다면 2016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 같은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동에서의 건설 수주의 비중 증가가 주효했다. 올해 중동 건설 수주액은 166억8522만달러로 83만8530만달러을 기록한 전년 대비 무려 98% 증가했다. 유럽에서 증가세도 돋보였다. 지난해 17억7639만달러에 그쳤던 유럽 건설 수주액은 50억2014만달러로 182% 증가했다.
이처럼 올 해외 수주액은 작년보다 증가한 모습이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초 목표한 400억달러 달성은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한다. 여기에 '12·3 비상계엄 사태'가 '탄핵정국'으로 이어지면서, 내년 해외 수주 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진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해외 건설 진단과 수주 전략' 보고서를 통해 "사업 수주는 한 국가가 보유한 경쟁력이 해외 건설시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며 "'국가 신인도'는 해외 수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