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한 선배는 '미담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선배는 "많은 기자들이 사건기사는 잘 쓰지만, 미담기사는 잘 쓰지 못한다. 실제로 쓰기도 어렵고, 쓴 노력에 비해 독자들이 제대로 알아주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담기사가 왜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많은 선행이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선행이 악행보다 숫자가 적다. 게다가 선행을 하는 그 소수의 사람들도 자신의 선행을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행기사는 사건기사보다 자극적이지 않다. 사건기사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분노는 가장 역동적인 감정이다. 선행을 접하고 느끼는 따뜻한 감정과는 매커니즘 자체가 다르다. 분노를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은 쾌락을 느끼는 호르몬인 도파민으로부터 합성된다. 두려움(스트레스)과 관련된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외부 스트레스나 자극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를 생성한다.
분노와 두려움은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지만,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세상에 좌절과 우울을 심는 역할을 한다. 포털사이트의 뉴스 페이지나 유튜브의 뉴스 클립을 보면 유난히 절망적인 제목들이 눈에 띈다. 일간지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 기사 제목은 본문을 간결하게 요약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포털사이트가 등장하고 뉴스의 전달방식이 바뀌면서 기사는 독자의 눈에 띄는 게 중요해졌다. 여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자극적인 제목'이다.
오랫동안 뉴스의 제목은 자극적인 것이 주를 이뤘다. 의대증원이나 비상계엄·탄핵정국, 체육계 비리,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오물풍선,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명태균 게이트 등 국내 사건사고부터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예멘 공습, 북한의 러시아 파병, 이란의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 등 해외 사건, 여기에 전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기상이변까지. 온통 불안과 분노를 부르는 뉴스들 뿐이었다.
그나마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나 파리올림픽의 성과 등 대중들에게 위로가 된 뉴스도 분명 있었다. 기분 좋은 소식에는 축하와 격려가 당연히 뒤따랐지만, 그렇지 못할만한 소식이 이어지기도 했다.
뉴스가 객관적인 사실만 나열하더라도 독자들은 불안과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 정도로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자극적인 제목과 부적절한 내용은 독자들에게 불안과 분노를 더 가중시켰을지도 모른다. 뉴스가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내년에는 더 기분 좋은 소식들이 생기길 바란다. 미담기사 같은 훈훈한 소식들이 많이 생겨서 뉴스가 조금 재미없어졌으면 좋겠다. 2024년에 불안과 분노를 유발한 뉴스들은 모두 구석에 묻어두고 기분 좋은 소식들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2025년 을사년을 상징하는 '푸른 뱀'은 새로운 시작과 지혜로운 변혁, 성장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성장하고 발전된 세상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
산업1부 여용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