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명령은 아직···현실화 시 타격 불가피 "대응 필요"
현대차그룹, 대미 투자 늘리며 우호적 관계 구축 나서
[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유세 기간부터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한 관세 인상을 수차례 강조한 터라 도입 시점 및 파급 효과 등에 관심이 쏠린다. 정책 자체는 중국을 겨냥한 성격이 짙지만, 실제 시행된다면 지난해 역대급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한 우리나라도 영향권에 들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현지시간 20일 정오 미국 대통령직을 수락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미국을 최우선으로 두고 무역 체계를 뜯어 고치겠다"고 말하며 관세 인상을 예고했다. 아직 관련 정책에 대한 뚜렷한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한 10~20퍼센트(%)보편 관세와 60% 대중 관세 도입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예고는 1974년 도입된 미국 무역법 제122조에 근거한다. 해당 법은 심각한 국제 수지 적자에 맞서 미국 대통령의 일시적 관세 인상 또는 수입 제한 권한을 부여한다. 그가 이를 현실화하면 우리나라 대미 수출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지난해 기준 557억달러 흑자를 낸 미국의 대표 적자국이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보편 관세 20%, 대중 관세 60%가 부과되면 우리나라 대미 수출액은 최대 304억달러(약 44조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연구원(KIET)도 여러 가정을 제시하며, 보편 관세 10%, 대중 관세 60%를 부과하면 우리나라 수출이 9.3%까지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보편 관세 10%를 부과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에 보편 관세 20%를 부과할 때에는 수출이 13.1%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관세 인상 시 우리나라 대미 수출 주력 종목인 자동차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대미 흑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또 주요 관세 인상 대상국인 멕시코에 수출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 지난해 자동차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8% 증가한 342억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액 1278억달러의 26.8%를 차지했다. 전체 대미 흑자는 과반 이상인 61.4%를 거뒀다. 멕시코에서는 기아가 K3·K4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고 올해에는 EV3도 수출 목록에 추가할 예정이다. 현대트랜시스와 현대모비스도 각각 변속기,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KIET는 관세 리스크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자동차 대미 수출이 불공정 무역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적극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현 KIET 동향·통계분석본부 전문연구원은 "관세 인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2장 제2절 제2-3조와 상충할 수 있기에, 이를 근거로 한 외교적 대응이 요구된다"면서 "필요 시 관세 부과 제외에 따른 미국 내 생산비 및 물가 안정을 관세 부과 대응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는 트럼프 1기 때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25%의 자동차 관세 부과 제외를 설득한 바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 대미 수출을 견인하는 업체이자 앞서 언급한 기아·현대트랜시스·현대모비스의 모기업인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생산 본격 확대뿐 아니라 보스톤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슈퍼널의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모셔널의 로보택시, 웨이모·엔디비아와의 전략적 협력 등 현지 투자 강화를 통해 당면한 위기를 차근차근 풀어간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사상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달러(약 15억원)에 이르는 기금을 투자하고, 취임식 전야제에 장재훈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파견한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현지 투자를 더 늘릴 수도 있다고 본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현대제철이 미국에 10조원 규모의 제철소 건립을 검토 중인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는 설명이다. 참고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원하는 게 해외 기업의 대규모 투자다.
현대제철은 조지아주 신공장 가동에 따른 수요 증가와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차량용 강판을 생산하는 현지 제철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부지는 루이지애나·텍사스·조지아 등 미국 남부 지역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 확정 및 착공 시점은 내년 초고, 준공 시점은 2029년이다. 현대제철은 여기서 생산한 차량용 강판을 인근 조지아주 신공장에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은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변화할 한국 정부의 대미 정책 등을 면밀히 살핀 후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본격 접촉한다는 계획이다. 성 김 현대차 그룹전략기획담당 사장은 "내부적으로 어떠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검토하고 있다"며 "핵심 역량 결집을 통한 대응책 마련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