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發 고환율 피해···RWA 늘어 CET1 비율 하락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주가는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적과 함께 공개된 주주환원 여력이 투자자들의 기대치에 못미쳤기 때문이다.
투자자 이탈 흐름이 이어지자 금융지주사들은 경영진을 중심으로 자사주를 대거 매입하거나 해외 IR을 개최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리딩뱅크를 다투는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 주가는 이달 2024년도 실적을 발표한 직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순이익 '5조 클럽'에 첫 입성한 KB금융지주의 주가는 실적을 발표한 이달 5일 9만1000원(종가 기준)에서 이날 8만2700원으로 9.12% 하락했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투자자는 KB금융 주식 약 3956억원(약 479만주)어치를 순매도했다.
신한금융지주 주가 역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실적을 발표한 지난 6일 종가 5만원이었던 신한지주 주가는 이날 4만7300원으로 5.4% 감소했고, 이 기간 외국인 투자자 순매도 규모는 약 1267억원(약 259만주)에 달했다.
두 금융그룹 모두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낸 것을 고려하면 이같은 주가 하락은 이례적이란 분석이다. KB금융은 지난해 연간 5조78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5조 클럽'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4조5175억원의 순이익을 시현했다. 연간 순이익 기준으로 지난 2022년(4조6423억원)보다 작지만, 당시 신한투자증권 사옥 매각(6400억원)에 따른 일회성 요인이 반영됐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번이 역대 최고 실적이다.
역대급 실적에도 주가가 하락한 것은 두 그룹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모두 하락하는 등 주주환원 여력이 투자자 기대치에 못미쳤기 때문이다.
CET1은 보통주자본을 금융사의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눈 수치로,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금융회사가 주주환원 규모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CET1 비율이 오를수록 배당 등 주주환원 여력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KB금융의 경우 CET1 13~13.5%를 초과하는 잉여자본을 주주환원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신한금융 역시 CET1 관리 목표를 기존 12%에서 13%로 상향, 이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주주환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공유한 바 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지난해 말 기준 CET1을 보면 KB금융이 13.51%로 전분기(13.85%)보다 0.34%p(포인트) 떨어졌고, 같은 기간 신한금융 CET1은 13.17%에서 13.03%로 0.14%p 하락했다. 신한금융의 경우 관리 목표치 13%를 겨우 맞춘 수준이었다.
지난해 4분기 비상계엄, 미국 트럼프 정부 재출범에 따른 불확실성 확산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은행 신용위험가중자산(RWA)이 대폭 늘었는데, 그 영향으로 CET1이 낮아진 것이다. 실제 KB금융은 지난해 4분기에만 RWA가 9조7000억원 늘었고 신한금융은 5조9000억원 증가했다.
전문가들도 기대치를 밑도는 자본비율이 투자자 이탈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KB금융에 대해 "큰 폭의 자본비율 하락은 아쉽게 다가온다"며 "업계 최고의 이익체력과 자본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기대치를 밑돈 자본비율과 자사주 규모로 프리미엄 일부 희석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신한금융 분석 보고서에서 "환율 상승과 비은행 계열사의 부진한 실적 여파로 CET1 비율이 하락해 자본력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투자자 이탈이 늘면서 그룹 경영진들은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수단을 꺼내들고 있다. KB금융 계열사 대표이사 12명과 지주 임원 13명은 지난 5일 실적 발표 이후 자사주 총 2만주를 장내 매입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일본 현지에서 주요 금융기관 및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올해 첫 해외 IR을 직접 진행하며 투자자 소통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