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사이드] 한은의 금리인하 깜빡이
[금융인사이드] 한은의 금리인하 깜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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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은선기자] 2014년 10월 15일. 한국은행 본관 15층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종전대비 25bp 내린 연 2.00%로 인하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금통위원들이 불과 2주전 국정감사에서 8월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두고 "정부 압력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된 것 아니냐"는 지탄을 받은 후였다.

이날 의장석에 자리한 이주열 총재는 양 손을 모았다 손잡이를 잡기도 하며 좌불안석인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야당 의원에게 집중포화를 맞은 뒤 기자들 앞에 선 정해방 위원의 표정도 다소 격앙돼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금통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 총재는 기자들에게 여유있는 미소를 보였고, 다가오는 사진기자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금통위원들이 '한 마음'으로 동결을 결정한 4개월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3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지난 12일, 이 총재의 미소와 농담은 또다시 사라졌다. 오전 9시가 임박해오자 금통위원과 이 총재가 침묵 속에 자리했고, 10월 인하 결정에 반대표를 던졌던 문우식 위원이 시차를 두고 들어왔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인 1.75%로 낮췄다.

시장은 놀랐다. 그동안에도 '금리 인하론'은 지속적으로 대두됐으나 3월 인하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예상돼 왔다. 불과 이틀전 채권시장 전문가 중 92%가 동결을 점친다고 발표했다. 한은이 그간 추가 인하에 보수적 입장을 보인만큼 한달새 결정을 뒤바꾸진 않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다시 말해, 한은의 금리인하 신호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돌아보면 최근 몇일간 한은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직원들은 가계부채와 관련된 발언을 극도로 자제했다. 특히 유동성 증가와 가계부채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에는 아예 답변을 회피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 총재도 금리인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계부채는 비단 금리인하에 기인했다기 보다는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금리와 부채의 연관성을 애써 부인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 이번 '깜짝' 금리인하에 대해서는 의사록 공개시기가 평소보다 늦춰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의사록에서 많은 위원들이 금리정책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공개 시기가 금통위날에 임박해 시장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3월 금통위를 하루 앞두고 상당수 시장 전문가들이 이달 금리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으로 풀이된다.

과거에도 기준금리 결정을 둘러싼 한은과 시장의 소통 문제는 종종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기준금리 조정에 앞서 시그널이 부족한 경우 시장에서는 '소통부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현재 한은은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1천조원을 훌쩍 넘어선 가계부채, 각국의 통화완화 정책 등 엇갈리는 대내외 변수 속에 운신의 폭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모습이다. 금리인하 깜빡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도 이같은 녹록치 않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정부와의 정책공조에 따른 독립성 논란과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사이에서 한은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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