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림·정영채 '라임·옵티머스로 같은 제재'···징계 수위 변화될 듯
[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문책경고' 징계가 해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같은 제재를 받았던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내년 연임 기대감을 갖게 됐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울행정11부는 지난 27일, 손태승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낸 중징계 취소 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금감원은 DLF 사태와 관련해 내부통제 미흡을 골자로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금감원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에 대한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는 점을 들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이 법령상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했기에, 중징계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금감원의 제재 사유 중 금융상품 선정절차 마련의무 위반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사유는 모두 인정되지 않아, 금감원의 제재는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은행이 내부통제규범을 마련하는 데 있어 다소 미흡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선 명확한 규정을 뒀어야 했다고 부연했다.
금감원은 그간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리로 부실 사모펀드 판매 금융사 CEO들에 칼날을 내밀었다. 하지만 법원이 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금융권은 술렁이고 있다. 앞서 손 회장과 같은 내부통제 미비를 근거로 중징계를 받았던 금융사 전현직 CEO들의 징계 수위도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중 라임 펀드 판매 증권사인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과 윤경은 전 KB증권 사장, 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현 금융투자협회장)은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지난해 11월 금감원 제재심에서 문책경고 처분을 받았다. 옵티머스 펀드 최다 판매사인 NH투자증권 정영채 사장은 올 3월 문책경고 결정이 내려졌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주의 △주의적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문책경고부터는 향후 금융권 재취업이 3~5년간 제한되기에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감원에서 내려진 징계를 최종 확정하는 금융위원회 정례회의는 손 회장의 판결 이후로 순연한 바 있다.
법원이 '내부통제 준수 의무 위반'을 금융사 CEO 제재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만큼, 금융위도 금감원의 징계안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이 가운데 현직 증권사 CEO로 중징계를 받은 박정림 사장과 정영채 사장의 제재 수위에 변화가 나타날지 관심이 모인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문책경고를 받게 되면 당장의 임기는 보전되지만 연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두 사람의 임기는 각각 올해 말과 내년 3월로, 징계가 한 단계 완화돼 '주의적 경고' 처분을 받더라도 연임이 가능해진다.
KB증권은 올해 2분기 투자은행(IB), 자산관리(WM) 등 전 사업부문 호조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시현했다. NH투자증권도 2개 분기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 사상 첫 '연간 영업익 1조원' 달성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 사장은 경영 능력을 인정 받고 지난해 라임 사태에도 연임에 성공했고, 정 사장 역시 옵티머스 사태가 유일한 '옥의 티'로 평가된다.
대형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판매사 CEO들을 제재하면서 핵심 잣대로 내세운 '내부통제 미비'는 법적 근거가 부실하는 판결이 나왔다"면서 "따라서 향후 징계를 내리는 당국의 기조에도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 안팎에서도 '판매사 CEO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의견이 형성되는 등 금감원의 제재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점 등을 보면 징계 원안이 고수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최근 취임한 금융위·금감원 수장의 CEO 제재 관련 입장이 이전 수장과 결을 달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정은보 금감원장은 "금융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며 "사후적 제재에만 의존하면 금융권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고 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금융사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시장친화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바 있다.
한편, 금감원은 손 회장의 징계 취소소송 1심 패소 판결에 대해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법부의 1심 판결을 존중한다"며 "판결문을 분석한 이후에 재심 필요 여부 등 구체적인 처리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