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 논란, 예산 문제도···"정책 수혜자 고려한 매입 기준 고민해야"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정부가 건설시장 연착륙과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민간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검토 중인 가운데 매입 대상과 수준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와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 주택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한 선제 대응 차원에서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추진한다는 취지지만 사실상 '민간 건설사 살리기'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건설사 연쇄 부도를 해결할 목적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이다 자칫 공공 재정 건전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만큼 적정 가격을 책정해 선별 매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1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5만8027가구로 전월보다 22.9%(1만810가구) 증가했다. 정부가 위험선으로 보는 6만2000가구에 근접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전체 미분양의 12.3%인 7110가구로 전월보다 0.5% 증가했다. 최근 가파른 증가 속도로 볼 때 12월 통계에서 이미 6만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기존 매입임대사업을 확대해 민간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여 공공임대 물량으로 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 방식으로 현재 7000여가구가 넘는 준공 후 미분양의 일부를 매입할 계획이다. LH는 지난달 21일에도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전용면적 19∼24㎡ 원룸형 36가구를 각각 약 2억1000만∼2억6000만원대에 매입했다. 총매입 금액은 79억4950만원이며 분양가의 15% 할인된 금액으로 사들였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정책 수혜를 보는 것은 기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재정이 투입되는 부분으로, 공공임대 공급 여력을 넓혀 민간의 과도한 가격 책정을 억제하는 방안인 동시에 양성화해야 하는 건실한 건설사 등에 대한 지원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장 경착륙 피해는 결국 일반 소비자들의 몫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선제적인 차원에서 나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건설업계에서도 정부 방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정부 방침이 실현되면 미분양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매입할지 등 세부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미칠 영향과 사업 계획 등을 고려하진 않고 있다. 내용이 구체화하면 그때 대응 방안이나 계획 등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의 '특혜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공기업이 세금을 들여 민간 건설사의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함으로써 건설사의 고분양가, 수요예측 실패 등 책임을 떠안는 셈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달 초 정부는 서울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수도권 규제지역을 모두 풀고 전매제한, 실거주 의무, 중도금 대출 제한, 무순위 청약 자격 등 규제도 대거 폐지하며 둔촌주공 등 일부 단지 계약률도 기대 이상으로 높아진 상황이다. 미분양 급증에 따른 분양시장 활성화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둔촌주공 구하기'라며 건설사에 정책 수혜가 돌아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가운데 정부 미분양 주택 매입 방안 역시 민간 건설사들을 위한 특혜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 예산도 문제다. 정부는 올해 매입임대주택 3만5000가구를 사들이기 위해 주택도시기금 6조763억원을 편성했는데 가구당 매입 예산이 평균 1억7000여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목표치 3만5000가구를 매입하기도 빠듯하다. 여기에 현재 LH는 정부 지정 채무위험기관으로 2026년까지 부채비율을 207% 감축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만큼 자체 자금을 투입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전망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분양 전환하려면 매입 가격, 세금 등을 얼마나 저렴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LH도 이익을 거둬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적정한 매입 가격을 책정해야 할 것"이라며 "싸게 사야 임대도 싸게 내줄 수 있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실제 수요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고심해야 한다. 고가 매입을 통해 '건설사 도와주기식'으로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사 등이 각기 다른 미분양 아파트의 품질은 균일하지 않고 공공이 매입해 임대한다고 해도 입지와 가격 등에 따라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매입 가격과 품질 등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선례가 없는 사안으로 좀 더 면밀한 기준을 적용해서 시범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고 품질, 입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 미분양 아파트에 과도한 혜택이 되지 않도록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