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은행들, 주주권 행사해 새 대표 선임해야"
사측 "임금체불 위기라는 노조 주장은 허위 사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시중은행의 현금 등 자산을 수송하는 국내 최대 업체 '한국금융안전'이 노사갈등 속 1년째 최고경영자(CEO) 공백 사태를 겪고 있다. 금융노조가 한국금융안전 지분을 보유한 시중은행들에 해결방안을 마련하라며 촉구하고 나섰지만 은행들과 최대주주, 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첨예한 탓에 경영 정상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24일 국회 정문 앞에서 '대표이사 공석사태 1년 한국금융안전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기업·신한·국민·우리은행 등 주주은행들은 공공성과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지난 32년간 자신들의 부수업무 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한 한국금융안전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대표이사 추천 주주권 행사에 나서달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금융안전의 최대주주인 김모 전 대표의 퇴진을 위해 은행 주주들이 나서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1990년 시중은행 100% 출자로 설립된 한국금융안전은 은행 현금수송 업무와 CD·ATM기 등 무인기계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현재는 청호이지캐쉬와 금융안전홀딩스가 지분 각각 18.55%, 18.5%를 보유하고 있는데, 김 전 대표가 두 기업의 지분을 모두 갖고 있는 만큼 사실상 최대주주다. 이어 우리은행(15%), KB국민은행(14.96%), 신한은행(14.91%), IBK기업은행(14.67%), 씨티은행(1.7%) 등도 주주로 있다.
30여년간 현금수송 시장을 선도해온 한국금융안전은 김 전 대표가 취임한 2019년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한때 10억원 수준이던 순이익은 2018년 1억3000만원, 2019년 마이너스(-) 7억2000만원, 2020년 -20억원, 2021년 -7억3000만원으로 하락하다 지난해에는 -40억원까지 곤두박질쳤다.
노조에 따르면 한국금융안전은 은행으로부터 업무를 수주해야 하는 구조임에도 김 전 대표가 은행들과 갈등을 빚은 탓에 일감을 제대로 받아오지 못했고, 이는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실제 지난해 6월 임기가 만료됐던 김 전 대표는 은행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연임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후 새 대표 선출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김 전 대표가 현재까지 권한대행으로서 사실상의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날 이동훈 한국금융안전 노조위원장은 "김 권한대행은 임기가 만료된 이후에도 현재까지 이사 및 권한대행으로 시중은행이 발주하는 수주계약 갱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주주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비정상적인 경영행태로 한국금융안전원에 대한 대외 평판을 크게 훼손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2019년 김 전 대표가 취임한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임금체불 직전에 내몰리는 등 1000여 직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동조합과 전 직원들의 노력과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월 이후 1년 넘게 대표이사 공백상태가 지속되면서 회사와 직원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또 주주 은행들이 기업 정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지난 5월 한국금융안전은 주주은행들이 60%에 달하는 주주권 행사를 통해 김 전 대표가 경영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5개 주주 은행이 새로운 기업에 지분을 일괄 매각하도록 하는 '정상화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이해관계자 간 복잡한 속내로 한국금융안전의 정상화 대책이 제대로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먼저 은행권은 대표이사 후보 추천·동의가 금산법(금융-산업 분리)상 '사실상의 지배행위'에 해당할 수 있어 주주권 행사를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김 전 대표의 연임을 반대한 것은 노사갈등, 경영지표 악화 등 뚜렷한 명분이 있었지만, 신임 대표를 추천·선임하는 것은 경영권 행사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안전에 대한 은행 지분 매각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사갈등이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경영지표마저 악화되고 있는 탓에 한국금융안전을 선뜻 인수할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으로부터 일감을 받아야 하는 업무 구조상 은행 지분이 대거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새로운 매수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경영상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최근 몇 년간 주주 은행들이 한국금융안전과 맺은 기존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것만 수백억원 규모에 달한다"며 "새로운 인수자로선 안 그래도 부담이 큰 상황인데, 고객사인 은행들마저 주주 위치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면 그것 자체로 부담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임금체불 위기 등에 대한 노조의 주장은 허위사실이란 입장이다. 한국금융안전 측은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임금체불이 발생할 것이라 공표하거나 예고한 적이 없고 실제 체불이 발생하지도 않았다"며 "임금에 대한 지불능력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적자의 원인에 대해서도 "임금이 상승하는데도, 주주 은행들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수료를 올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각고의 노력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룬 시점에 한 주주은행이 연간 100억원 이상의 전국단위 계약을 경쟁사로 이관했는데, 그 원인은 노조의 시위, 파업 등으로 은행 평가항목 중 노사안정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