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량·저마진' 전략 우려···연체율 꾸준히 상승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올해 들어 5대 시중은행에서 기업대출이 50조원 넘게 불어나는 등 기업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출규제 등 가계대출을 마냥 늘리기 어려워진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눈을 돌린 결과다.
문제는 이같은 기업대출 확대 전략이 '외형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기업고객수 늘리기에 몰두하다 보니 '저(低)마진 출혈경쟁'이 불가피해졌고, 은행의 건전성 악화 우려도 뒤따르고 있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합산 기업대출 잔액은 756조330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703조6747억원)보다 52조6562억원 증가한 규모다. 올해 들어 9개월 동안 기업대출이 52조원 넘게 불어났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연간 기업대출 증가 규모(약 65조원)의 8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전월(747조4893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8조8416억원 늘었다.
최근 은행들은 주 수익원이던 가계대출보다 기업대출 늘리기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정부의 가계대출 옥죄기가 강해지면서 기업대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대출자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하나은행은 물론, 경쟁사 우리은행도 기업대출 점유율 1위 달성을 목표로 파격적인 인센티브 조건을 내걸었다. 다른 은행들도 저마다 기업대출을 크게 늘리며 수익성 제고에 나서고 있다.
은행의 기업대출 경쟁은 사업자금 확보에 나서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도 반길만한 소식이다. 시장금리 상승으로 높은 이자를 주고 회사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낮은 금리의 은행대출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은행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서 최근 기업대출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업대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올해에만 기업대출을 19조1533억원 늘렸는데, 이는 다른 시중은행과 비교해 2~3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꿈꾸는 우리은행이 같은 기간 9조8127억원을 늘렸고, 뒤이어 KB국민은행 9조7844억원, 신한은행 7조3587억원, 농협은행 6조5471억원 순을 기록했다.
문제는 빠르게 대규모로 늘린 기업대출의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 7월 말 0.41%로 전월보다 0.04%p(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7월 말 대비로는 0.17%p 올랐다. 우량대출로 분류되는 대기업대출 연체율의 경우 전월보다 0.01%p 오른 0.12%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49%로 0.06%p 상승했고, 개인사업자(소호)대출의 경우 0.04%p 오른 0.45%를 기록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대출의 경우 실제 연체 규모가 대폭 늘기도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대출 연체액은 올해 6월 말 28조36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3분기(13조6300억원) 대비 108.1% 급증한 규모다.
업계에선 경기 악화로 기업대출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무턱대로 늘리고 보자'는 식의 대출경쟁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당장의 부실 가능성은 크지 않더라도, 질이 좋지 않은 대출을 대규모로 쌓았을 때의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대규모로 받은 저마진 고객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추가 유지비용이 불가피한데, 이는 장기적으로 은행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기국회 및 국정감사를 앞두고 지난달 발간한 '한눈에 보는 재정·경제 주요 이슈' 보고서에서 기업부채 현황과 관련해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증한 기업대출은 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경기가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연체율이 추가로 더 올라간다면 늘어난 기업대출이 은행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경기가 악화되다 보니 비우량 기업에 대출을 적극 내주기 어려운 상황인데, 일부 은행들이 그 틈새를 노리고 해당 기업에 대출을 적극 내준다든가, 다른 은행들보다 마진을 낮게 부르는 방식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등 과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수년 전에도 이런 과열경쟁으로 은행들이 부메랑을 맞은 적이 있기 때문에 최근의 행태도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