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국산 고속철도차량이 사상 처음으로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최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민관합동으로 우즈베키스탄철도청(UTY)이 발주한 2700억원 규모의 동력분산식 고속철도차량 공급·유지보수 사업을 수주했다.
UTY에 공급하는 고속철도차량은 최고시속 250km(킬로미터)를 내고, 한국의 표준궤(1435mm(밀리미터))가 아닌 현지에 맞는 1520mm 광궤를 단다. 현지 전력에 호환되는 동력 장치도 들어간다. 좌석 등급은 VIP, 비즈니스, 일반 등 3개다. 편성수는 총 6편성이고, 편성당 6량이 아닌 7량으로 구성한다. 좌석수는 389석이다.
투입 예정 노선은 타슈켄트~부하라(590km(킬로미터)), 부하라~히바(430km), 미스켄~누쿠스(196km) 등 총 3구간이다.
국산 고속철도차량 첫 해외 시장 진출이 성사된 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 외교와 전폭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9월 윤석열 대통령은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벡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고속철 등 대규모 교통 기반시설 사업에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당부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은 이번 사업 성사를 위해 우즈벡에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으로 금융지원을 결정하면서 수출길을 열었다. 고속철도차량 기술을 보유한 해외 선진국들이 국제 입찰에서 자국 기업의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구매국에 양허성 자금을 제안하는 관례를 고려한 조치다.
또 국토교통부는 작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50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회의를 개최하며 회원국인 우즈벡에 국산 고속철도차량 기술을 알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외교부도 지난해 한·우즈벡 비즈니스포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3월에도 제16차 한·우즈벡 정책협의회를 실시했고, 주우즈벡 대한민국 대사관과 주한 우즈벡 대사관 역시 양국의 사업 협력이 성사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앞서 지난 2022년 11월 대통령 주재 수출전략회의 후속으로 출범한 정부 주도의 수출수주지원단은 민간 기업의 수주 사업을 양국 정부간 협력 사업으로 격상시키는 맞춤형 지원을 진행했다. 지원단은 현대로템이 우즈벡 정부 고위급 인사를 대상으로 고속차량 제작 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홍보할 수 있도록 정부 간 외교 채널을 가동했다.
작년 9월 열린 양국 경제부총리 회의에서는 고속철도차량 수주 사업이 논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현대로템이 우즈벡 고속철도차량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는 밑거름 역할을 수행했다.
이번 수주는 향후 국산 고속철도차량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국내에만 국한됐던 고속철도차량 제작·운영 실적이 해외로 확장될 경우 추후 국제 입찰 시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어서다. 고속철도차량 연구개발부터 함께 해 온 국내 128개 부품협력업체들과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고속철도차량 국산화는 해외 수출을 목표로 약 30여년간 진행됐다. 경부고속철도 건설 착수 직후인 1994년 당시 프랑스 고속철도차량 제작사인 알스톰과 맺은 고속철도차량 제작 기술 이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데다 제 3국으로의 수출 불가 등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에 한국형 고속철도차량 개발 필요성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다.
결국 1996년 현대로템을 포함, 70여개 산학연이 참여한 대형 국책 과제인 '시속 350km급 한국형 고속철도차량 HSR-350X(G7) 개발 프로젝트'가 본격 착수됐다. 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2008년 첫 국산 양산형 고속철도차량인 KTX-산천이 출고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4번째로 고속철도차량 국산화에 성공한 국가가 됐다. 2019년에는 KTX-이음 첫 출고로 동력분산식 고속철도차량 기술까지 보유한 국가로 기록됐다.
특히 시속 350km급 고속철도차량 동력시스템 설계·제조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도 지정돼 있다. 국가핵심기술은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유출 시 국가안전보장 및 국민경제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산업 기술을 뜻한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민관 합동으로 이뤄낸 고속철도차량 국산화 성과가 해외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게 돼 자랑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향후 국내는 물론 우즈벡에서의 안정적인 납품과 유지보수 경험을 바탕으로 K고속철의 높은 기술력과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더욱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