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금지' 쟁점···"노사관계 파탄" vs "노동 기본권 보장"
경제계, 사용자 범위 확대도 반발···"1년 내내 대응할수도"
국회 본회의 통과 유력···尹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 주목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22대 국회 개원 초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 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체회의 통과를 앞둔 가운데 경제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국회 환노위 고용노동법안소위는 16일 노조법 2, 3조 개정안 4건을 심사한 뒤 이를 병합한 위원회 대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22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해당 개정안을 심의한다. 노동계에서는 개정안이 무난하게 전체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 환노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날 경제계와 노동계는 각각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 상근부회장들은 16일 서울 서초구 오전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노란봉투법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같은 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봉투법을 저지하려는 국민의힘을 규탄했다.
양측이 우려하는 최대 쟁점은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고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한 것에 있다. 이 밖에 노조 가입 범위를 확대한 것도 주요 쟁점에 포함돼있다.
현재 노조법에서는 '노조법에 따른 단체교섭·쟁의행위'로 발생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이 면책되는데 여기에 '이 밖의 노동조합 활동'도 면책될 수 있도록 했다. 또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노조·노동자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하여 부득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한 노조·노동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조항도 추가됐다.
앞서 2022년 대우조선해양(現 한화오션)은 거제도 옥포조선소 1도크를 50여일간 점거하고 파업을 진행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한 바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한화오션은 이 소송을 승계받아 현재까지도 법정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오션은 "하청지회 손배소와 관련해서는 "생산시설에 대한 장기간 무단점거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회사로서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재판 진행 경과를 살펴볼 예정"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현재 불법쟁의행위를 둘러싼 손해배상문제의 절대다수가 폭력적으로 이뤄지는 사업장 점거 관행에서 비롯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개정 내용을 전혀 담지 않고 오히려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사실상 봉쇄해 극단적인 불법쟁의행위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할 권리를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라고 하는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라며 "노동조합 할 권리를 손배 가압류로 노동기본권을 훼손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한 내용도 쟁점이다. 2020년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로 구성된 전국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CJ대한통운은 노조법상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다.
올해 초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거부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본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도 이 같은 판결이 유지된 가운데 CJ대한통운은 대법원에 이를 상고한 상태다.
자동차업계에서도 사용자 범위 확대에 우려를 전했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장은 "실질적 지배력이란 모호한 개념으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면 (원청이) 1년 내내 교섭 요구와 파업에 대응해야 하고 교섭 요구를 거부하면 형사책임 부담까지 지게 될 것"이라며"1∼2개 부품업체 혹은 일부 공정에서의 파업만으로도 완성차 생산이 중단될 수 있는 자동차산업 특성상 상시 파업이 초래돼 정상적인 사업 운영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개정안에서 "노동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노조는 노조로 보지 않는다"라는 정의가 삭제되면서 특수고용직인 배달라이더나 택배기사 등 '노동자'로 정의내릴 수 있게 됐다.
공공운수노조는 "ILO 핵심 협약 87, 98호가 비준되면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조 설립 필증을 받았다"며 "근로자 정의 개념 확대가 포함되도록, 폭넓게 권리 보장을 할 수 있도록 노조법 2, 3조 개정안을 발의해야 통과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경제계와 노동계의 대립이 첨예한 만큼 통과 이후에도 후폭풍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에서는 국회에 노란봉투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를 저지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면서 통과 이후에는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현재 국회가 여소야대 정국인 만큼 경제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대통령의 거부권 요청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1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논의할 당시에도 경총을 포함한 경제단체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손경식 경총 회장은 "대통령께서 거부권 행사로 이 나라의 기업과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시길 간곡하게 호소드린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