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은 미국의 전설적인 갱스터 힙합그룹 N.W.A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 NWA의 여러 에피소드 중 인상적인 게 하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빈민가 컴턴에서 구성된 N.W.A는 흑인 빈민가 출신답게 백인 경찰에게 여러 차례 과잉진압을 당한 경험이 있다(실제 마약 밀매, 폭력의 전과도 있지만 경찰의 과잉진압 사례도 있다). N.W.A는 컴턴에서 있었던 이 같은 경험을 살려 1988년 'Fuck the Police'라는 노래를 발표한다.
이 노래는 젊은 흑인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만, 경찰과 FBI는 당연히 심기가 불편해진다. 이 때문에 N.W.A의 디트로이트 공연을 앞두고 경찰은 이들에게 "그 노래를 부르지 마라"라고 경고한다. N.W.A는 "일단 알겠다"라고 말하고 공연을 강행하고 경찰은 공연장 뒷편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평화롭게 공연이 진행되던 중 N.W.A는 경찰 보란듯이 '그 노래'를 불렀고 제대로 '긁힌' 경찰들은 공연장을 급습해 N.W.A와 관객들을 무차별로 검거한다.
이 밖에도 이 노래는 발매되자마자 방송사로부터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미국 내에서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있을 때면 이 노래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때도 이 노래가 등장하며 미국 흑인사회에서는 '민중가요' 취급을 받고 있다.
# '쿵푸팬더', '슈퍼배드', '황당한 외계인 폴'로 알려진 캐나다 출신 배우 겸 작가 세스 로건은 2014년 자신의 절친 제임스 프랑코와 '디 인터뷰'라는 영화를 만든다. 이 영화에서 세스 로건은 감독 겸 제작, 주연을 맡았다.
'디 인터뷰'는 미국의 한물 간 시사토크쇼 진행자들이 우연한 기회로 북한의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은 영화지만, 저급한 묘사 등의 이유로 평단에서는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른 의미로 화제를 모았다. 추수감사절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의 제작사인 소니 픽쳐스의 네트워크가 해킹을 당해 주요 기밀파일이 유출됐다. 여기에는 경영진들이 민감한 대화를 나눈 이메일 내용까지 포함돼있어 소니 픽쳐스는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미국 정부는 소니 픽쳐스를 해킹한 세력이 북한인 것으로 파악했다.
또 소니 픽쳐스와 미국 극장가를 향한 북한의 테러 위협까지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됐다. 특히 영화를 만든 세스 로건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자들에게 살해 위협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련의 정황에 비춰봤을 때 세스 로건을 위협한 세력은 북한인 것으로 보인다.
# 23일 개봉한 영화 '어프렌티스'는 이란 출신의 문제적 작가 알리 압바시의 작품이다. 그는 2018년 '경계선'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았고 2022년에는 '성스러운 거미'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주연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어프렌티스'는 젊은 시절 도널드 트럼프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세입자들에게 밀린 집세를 받으러 다니는 부동산 업자 도널드 트럼프(세바스찬 스탠)가 악명높은 변호사 로이 콘(제레미 스트롱)을 만나 악랄한 재벌로 거듭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5월 20일 칸영화제에 최초로 공개됐으며 미국 현지에서는 지난 11일 개봉했다.
영화는 미국 대선을 약 한달 앞두고 개봉하면서 정치권에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소위 '긁힌'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는 14일 자신의 X(트위터)에 이 영화를 두고 "완전한 가짜이자 저질스러운 영화"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캠프는 칸 영화제 공개 당시 영화 제작진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엄포하기도 했지만, 실제 법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 'SNL 코리아 리부트'는 쿠팡플레이에게는 '개국공신' 같은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쿠팡플레이는 OTT 업계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업계 2~3위까지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저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이 프로그램은 몇 가지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뭇매를 맞고 있다. 'SNL 코리아'는 리부트 이후 일부 시청자들에게 사회초년생을 조롱하고 희화화한다는 논란이 있어왔다. 최근 제기된 한강 작가나 뉴진스 하니에 대한 패러디는 이 같은 조롱, 희화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SNL 코리아'도 처음에는 과감한 정치풍자를 선보였다. 올해 3월 시즌5는 공개와 함께 KAIST 졸업식에 있었던 이른바 '입틀막 사건'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SNL 코리아'가 과감한 풍자를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21년 10월 대선후보였던 윤 대통령이 'SNL 코리아' 에 출연해 했던 말처럼 풍자는 'SNL 코리아'의 권리다. 풍자하는 입을 틀어막을 자격도 없고 풍자를 하라고 등을 떠밀 자격도 없다. 그러나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칼 끝이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지적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에피소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 권력자를 상대로 비꼬는 콘텐츠를 내놨고 거기에 권력자가 소위 '긁혔다'. 그리고 권력자는 콘텐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람들의 입에서 콘텐츠는 재생산됐다. 지금 'SNL 코리아'가 '긁은' 대상은 사회초년생과 한강 작가의 독자, 버니즈(뉴진스 팬덤) 정도다. 간간히 선보이는 정치 풍자도 정치권을 자극하지 못한다.
'SNL 코리아'의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압수수색을 무릅쓰고 권력자를 더 과감하게 긁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도 지켜야 할 가정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쿠팡플레이의 개국공신인 'SNL 코리아'가 과거의 영광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과감해질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