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갑질 下] 본사가 '물량팀' 사용 강제···"협력사 아닌 인력사무소"
[현대重 갑질 下] 본사가 '물량팀' 사용 강제···"협력사 아닌 인력사무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사 부서장 보직해임 후 공사대금 나 몰라라"
현대중공업 위장도급 철폐 대책위원회가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의 '갑질'에 대해 공정위에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진=주진희 기자)
현대중공업 위장도급 철폐 대책위원회는 지난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위가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갑질 행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진=주진희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갑질 의혹에 대해 전수 조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본사가 하청업체에 '물량팀' 사용을 강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초 계약과는 달리 공사 대금까지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 사가 도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원청이 인사권 등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력사는 인력수급업체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인 대한기업은 지난 6월 본사가 물량팀 투입 등 인원 충원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는 "당시 원청 부서장이 작업자를 40명 정도 늘릴 것을 지시하면서 물량팀 두 팀을 사용할 것을 강요했는데 한 팀은 일을 시켰지만 또 다른 팀은 거절했다"면서 "평균 노무비(14만원)보다 높은 20만원의 일당을 요구해 안 된다고 했지만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원청의 약속을 믿고 물량팀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조선소 현장에서 물량팀이란 5~20명의 노동자로 구성된 작업반이다. 팀장 1명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물량팀은 하청 소속 직원들과는 별개로 독립된 조직이다. 하청업체에 상주하는 팀과 여러 업체를 옮겨 다니면서 일감을 받는 팀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들은 공정에 투입되는 인원의 70%를 물량팀으로 채운다. 물량팀을 사용하는 이유는 촉박한 공기로 일감이 갑자기 늘어날 경우 기존 직원들로는 감당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청업체가 이들에게 일감을 다시 제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재하도급과 성격이 비슷하다. 

김 대표는 "결국 대금은 지급되지 않았고 노무비도 체불됐다"면서 "당초 제시된 일당 20만원을 거절하자 원청에서 18만원을 제시했고, 재차 거절했더니 부서장은 17만원으로 책정해 물량팀에 작업을 맡겼다. 어쩔 수 없이 금액이라도 맞춰달라고 했더니 6월 말쯤 해당 부장과 담당 과장들이 모두 보직해임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임 부서장은 앞서 벌어진 상황을 모르겠으니 당신들이 책임지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말만 반복했다"면서 "품위서를 받아서 지급하겠다는 구두계약을 토대로 공사를 진행하지만 품위서가 반려되면 책임은 하청이 떠맡아야 하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서울파이낸스>가 입수한 녹취파일에는 물량팀 투입과 관련된 대한기업 소속 직원 A씨와 물량팀장 B씨의 대화가 담겨있다. B씨가 "원청 진짜 너무하다"고 말하자 A씨는 "솔직히 말해서 김 대표는 당신을 모른다. (본사 소속) 홍모 부장이 직접 꽂아넣었다. 공사대금까지 다 맞췄는데 (원청에서) 지급하지 않아서 이 사단이 났다"고 답했다. 이에 B씨는 "일당 20만원도 본인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시 다른 작업으로 바빠서 일할 상황도 아니었지만 며칠 해당 현장에 들어갔는데 이런 난감한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대외적으로 물량팀 존재를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본사는 협력사와 도급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지 물량팀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면서 "원청이 관여할 부분도 아닐 뿐더러 언급할 입장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부서장은 본사 소속은 맞지만 조직 개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물러났기 때문에 이번 건과는 관계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선소 현장에서는 원청의 인사권 개입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물량팀 알선을 포함해 하청업체의 총무·소장·반장 교체를 강요하거나 폐업한 업체의 직원을 고용할 것을 지시하는 등 반복되는 경영 간섭으로 회사 안정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력사, 도급업체가 아닌 인력사무소 성격에 가깝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적자로 당초 170여 명이었던 대한기업 직원은 10명만 남아있는 상태다.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와 맺은 하도급계약서 제33조에는 '도급인(원청)은 수급인(하청)의 사업 활동 자유나 경영 자율성 등 수급인의 경영활동에 대한 자주적 결정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경영간섭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조선3사 갑질피해대책위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서치원 변호사는 "하청업체들이 일당이 높은 물량팀을 고용하는 이유는 납기일을 맞출 목적으로 원청에서 비용 보전을 해준다는 전제 하에 쓰는 것"이라면서 "대금이 지급되더라도 실제 공수로 계산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할 뿐더러 원청이 물량팀 사용을 강제했다는 내용은 별도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이로 대표 박병규 변호사는 "해당 사례는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금지 중 사업활동 방해(제3조의2 제1항 제1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중 사업활동 방해(제23조 제1항 제5호)'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실 관계가 명확할 시 하청의 이익을 원청이 지정한 물량팀에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근로기준법상 중간착취 배제 조항의 위반 소지도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 하도급 갑질 사례의 경우 하도급법과 공정거래법 등의 위반을 넘어서 '사기죄'에 해당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관련기사

이 시간 주요 뉴스
저탄소/기후변화
전국/지역경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