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확대에도 경제성장률 7%대
삼성·LG는 '공들이기'···투자 규모 확대
출산율 감소 '변수'···"그래도 젊은 나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우리 경제에서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지난 정부에서 '신남방정책'을 추진할 때였다. 베트남은 지난 정부 당시 대표적 외교정책인 신남방정책에서 인도네시아와 정책 방향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그런 베트남이 투자처로서 이전보다 매력이 다소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SK그룹은 그룹 리밸런싱의 일환으로 베트남 빈그룹의 지분 1.33%를 매각했다. 이는 당시 인수가 기준 11.1%p 정도로 SK그룹이 손해를 감수하고 팔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앞서 SK는 지난해 말 또 다른 베트남 기업인 마산그룹의 지분도 일부 매각했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베트남 사업에서 서서히 손을 떼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베트남은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 가운데 중국과 미국, 아세안, EU 다음으로 가장 큰 시장이다. 국가연합인 아세안, EU를 제외한다면 전세계에서 3번째로 큰 시장이다.
베트남향(向) 수출액도 크게 늘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2월 수출입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해 베트남 수출 총액은 58억33100만 달러에 이른다.
다만 최근 글로벌 경영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베트남에도 침체가 불어닥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SK그룹의 베트남 지분 정리에서도 나타난다. SK그룹은 지난 12일 베트남 빈그룹의 지분 1.33%를 296억원에 매각했다. 이는 2019년 인수 당시 금액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돈이다. 이번 지분 매각 이후 SK그룹의 빈 그룹 보유 지분은 기존 6.05%에서 4.72%로 줄어든다. 이와 함께 SK그룹은 빈그룹의 주요 주주 지위에서도 빠진다.
SK그룹은 지난해 베트남 마산그룹의 지분도 매각했다. 지난해 11월 SK그룹은 마산그룹의 지분 5.05%를 약 3000억원에 매각했다. 이는 2018년 인수 당시 금액 5000억원에 비하면 줄어든 규모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SK그룹이 보유한 마산그룹 지분은 8.72%에서 3.65%로 줄어들었다.
SK그룹의 베트남 지분 정리는 그룹 자원에서 진행하는 사업구조 개편과 리밸런싱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현지 경영진들의 판단 착오와 베트남 경제지표의 변화도 영향을 주고 있다.
빈그룹은 2017년 빈패스트를 설립하고 전기차 사업에 진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빈패스트는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의 영향을 피하지 못하고 실적 부진을 맛봤다. 3분기 빈패스트의 순손실은 2조9570동(약 1710억원) 규모에 이른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순손실은 13조2510억동(약 8000억원)에 이른다.
자국 내 전기차 선호도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전체 자동차 기업 순위 중 28위에 오르며 '중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유통 전문기업인 마산그룹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양호하다. 커머스 자회사인 윈커머스가 윈마트 운영 효과로 올해 3분기에 78만8000달러의 흑자를 달성했다. 다만 SK그룹의 리밸런싱에 따라 사업구조 재편과 현금 확보를 위해 마산그룹의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고려해 마산그룹은 SK그룹과 협력 관계를 지속하기로 했다.
SK그룹은 이처럼 베트남 현지에서 힘 빼기에 들어갔지만, 에너지 사업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의 자원개발 자회사 SK어스온은 최근 베트남 남동부 해상 쿨롱 분지 15-2/17 광구에서 원유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SK그룹은 최근 회사 내부 사정으로 베트남 사업에서 힘을 빼고 있지만, 다른 기업들은 현지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베트남 시장조사기관 베트남리포트가 베트남넷 신문과 공동 조사한 베트남 500대 우수기업(VNR500) 순위에서는 삼성전자 베트남 생산법인인 삼성전자 타이응우옌이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2017년 1위에 오른 후 계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밖에 LG전자의 가전 생산기지인 하이퐁법인이 15위에 처음 진입했고 한화생명 베트남법인도 278위에 이름을 올렸다.
VNR500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영위 중인 기업 중에서 자산 규모, 근무자 수, 성장률, 경영 실적, 베트남 내부 기업 평판 등을 평가해 상위 500개 기업을 나열하는 기업 평가 조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7월 베트남 서열 3위인 팜민찐 총리와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베트남을 앞으로 3년 내에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LG는 이미 베트남에 LG전자뿐 아니라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이 진출해있다. 이 가운데 LG이노텍은 올해 양산을 목표로 베트남에 카메라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또 LG전자는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종합 R&D센터를 통해 동남아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SK그룹이 최근 힘을 빼고 있지만, 베트남은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베트남뉴스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베트남 통계청은 최근 베트남의 지난해 GDP 성장률을 7.09%로 집계했다. 이는 베트남 정부의 공식 목표 성장률인 6.5%를 넘은 것이며 2023년 5.05%보다 2%p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싱가포르 대형은행그룹인 UOB는 베트남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6%에서 7%로 상향조정했다.
여기에 인구의 절반이 30대 이하인 만큼 우리나라에 비해 젊은 편에 속해 잠재적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다만 최근 5년새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장기적 침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베트남 현지 매체는 베트남 출산율이 2021년 2.11명에서 점차 감소해 지난해 1.91명까지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 비하면 높은 출산율이지만, 감소세로 전환하며 매년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출산율 감소와 기상이변 등 불안요소가 존재하지만, 베트남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경제비즈니스연구센터(CEBR)는 베트남이 2033년까지 연평균 6.4%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2033년 세계 24위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며 2038년에는 세계 21위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