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엔, 대우 등 대형사 신축 아파트 품질 문제 심각···"공기·비용 감축 탓"
"입주 전 보수, 재시공" 조치에도 불신 확산···"근본 문제 해결돼야 할 것"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최근 수억원에 달하는 고급 브랜드 아파트 단지들에서 휘어진 외벽, 곰팡이 등 하자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건설업계 '부실시공', '불량시공' 논란이 다시금 번지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아파트들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1군 대형 건설사의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점에서 건설업계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6개월 기준 대형 건설사 중 가장 많은 하자가 발생한 현대엔지니어링에서 또 다시 하자 논란이 벌어졌다. 이달 31일 입주 예정인 전남 무안군 '힐스테이트 오룡'에서도 무더기 하자가 발견된 것이다.
논란은 지난 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역대급 하자 나온 신축 아파트'라는 제목과 함께 건물 외벽이 휘고 벽면이 뒤틀린 아파트 사진이 올라면서 번졌다. 이 단지 입주예정자로 추정되는 A씨가 올린 게시글에는 △건물 외벽과 내부 바닥, 벽면 기움 △콘크리트 골조 휘어짐 △창문과 바닥 사이 틈새 벌어짐 △엘리베이터 및 계단 마감 미흡 등 다수의 하자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단지는 1세대당 하자가 평균 150건에 이르고, 해당 아파트에 접수된 하자 건수가 6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당진에서 9월 입주 예정인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당진 푸르지오 3차'(667가구)에서는 최근 일부 가구 천장 마감재로 사용한 목재와 주변 콘크리트에 곰팡이와 포자가 다수 발견됐다. 불량 각재 사용에 대한 보고를 받은 당진 공동주택팀이 확인한 결과 총 667세대 중 약 40세대에서 곰팡이가 확인됐다. 입주 예정자들은 "이전 자재 반출입 과정에서 감리업체가 곰팡이 문제를 지적해 반입 금지를 요청했지만, 시의 중지 명령 전까지 불량 자재가 그대로 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진 현대엔지니어링과 대우건설 측은 입주 전까지 하자 보수 및 재시공을 통해 입주민 불편이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일반적인 하자가 있는 부분은 조치계획서를 군청에 이미 제출한 상태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사진처럼 외벽이 휘었다는 부분 등은 구조적 문제가 없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며 "현재 군청에서 안전구조점검을 진행 중인 만큼 충분히 협조하고 추후 문제 발생 시 보수 등 조치를 진행해 입주 시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단지 일부에서 곰팡이가 발생했지만 전 세대 천장을 재시공할 계획이다. 최대한 인력을 투입해 입주 전까지 문제가 없도록 철저히 재시공할 것"이라며 "일부 자재관리 소홀과 하청‧감리업체와의 소통 문제가 있던 데 대해 시공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지난달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경산 경북 신축 아파트 '경산아이파크 1차' 단지에서 오물과 낙서, 마감 불량 등 약 5만2000건에 달하는 하자가 발견됐다. 또 지난 3월 현대건설이 시공한 '힐스테이트 대구역 오페라' 주상복합 아파트에서도 벽지 오염과 타일 파손, 내부 벽 균열 등 총 6만6411건의 하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GS건설의 경우 작년 11월 경산 중산자이 아파트(1144가구) 사전점검에서 △외벽 콘크리트 균열 △철제난간 시공 부실 △전기공사 배선·새시 내창 유리 누락 등 모두 3만7000여건의 하자가 발견된 바 있다. 아울러 2021년 준공한 서울 서초구 '방배그랑자이'에 중국산 유리가 수천장 사용된 사실이 지난달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해당 단지는 한채당 실거래가가 30억원을 웃도는 고급단지로, 업계 파장이 컸다.
온라인 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해당 문제 관련 게시글에는 "집이 한두푼도 아니고···하자 생겨서 잘못되면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거잖아", "몇 년 동안 심각한 아파트 너무 많은 듯···이러면 뭘 믿고 집을 사냐" "말 나오는 요즘 신축들 진짜 대형사고 날까봐 너무 무섭다" "이래놓고 분양가 5억, 6억원 이러니 황당하다. 1군 건설사 하이엔드 브랜드도 저따구로 짓는데 다른 곳은 어떨지···" 등 누리꾼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문제는 시공사-입주자간 하자 분쟁이 최근 10년새 급증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2월까지 연평균 4300여건에 달하는 하자 분쟁사건이 처리됐다. 특히 2014년 기준 약 2000여건에 비해 10년간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지나치게 짧은 공기, 일용직 근로자들의 허술한 마무리, 시공사의 책임 의식 결여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업계에선 건설 경기 불황 속 정부의 신속한 주택공급 기조로 인해 공기가 단촉되면서 하자가 늘어났다고 보고 있다. 또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건설사가 최저 입찰로 하도급사를 선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는다. 치솟는 자잿값과 인건비 등 비용을 절약하다 보니 시공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과거와 달리 입주자들이 전문 대행업체를 고용해 훨씬 더 꼼꼼히 점검에 나서고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노동 시간 감축 등으로 노동 일수가 줄고 현장 환경이 달라졌는데 공기는 빠듯하고 고금리, 자잿값 상승 등 경기 악화까지 겹치면서 단축 공사나 날림 공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면서 "하청업체 간 소통 문제나 갈등도 발생하면서 품질 관리 미흡이나 부실시공 등이 늘어나는데 근본적인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하자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되면서 하자 적발 업체 등 전문 대행 업체를 고용하는 사례들도 많고 일부 단지 경우 입주 시 '협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작은 하자들을 심각하게 부풀리거나 분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