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호재' 용인 처인구, 토지 거래 중 57.2%가 지분 쪼개기 형태
지분 쪼개기는 사업 지연·토지가 상승 원인···"투기 방지 대책 철저히 계획해야"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토지거래허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정비 대상·개발 지역에서 '지분 쪼개기'를 통한 투기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재개발·재건축을 앞둔 서울 일부 지역과 반도체 클러스트 등 국가 산단이 들어서는 경기도 용인시 등 호재를 앞둔 곳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이 같은 지분 쪼개기가 사업을 더디게 하고, 토지 가격을 지속 상승시킬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청은 지난달 25일 본회의에서 연희동 28번지 일대 재개발 추진을 우선 중단하겠다고 결정했다. 문성호 서울시의회 의원(국민의힘·서대문2)이 지난달 이곳 재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추진위 측이 지분 쪼개기를 유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이에 '연희3동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사업' 추진위는 신통기획 추진을 철회하기로 했고, 재개발 사업을 재진행하려면 추진위를 새로 꾸려야 할 상황이 됐다.
외부 투기세력 유입 등으로 재개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이곳만이 아니다. 서울 광진구 자양4동은 2022년 모아타운(서울시 저층 주거지 정비사업) 대상지로 선정됐지만, 현재 사업이 무산돼 자치구 검토가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약 120㎡ 규모 세 개 필지를 57명이 나눠 갖는 지분 쪼개기 문제가 적발되면서, 주민 재개발 동의율이 떨어진 것이다.
모아타운 대상지가 13곳으로 가장 많은 중랑구에서도 한 부동산 업체가 빌라 사이 골목길 149㎡를 2억9000만원에 사들이고는 평균 5㎡씩 쪼개고, 가격을 두 배로 부풀려 29명에게 판 사례가 등장했다. 관악구 봉천동에선 골목길 3곳, 598㎡의 주인이 갑자기 71명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역시 한 명당 지분이 10㎡도 안됐다.
이 같은 사례에 서울시는 모아타운 대상지 85곳에 대해 이상 거래현황을 전수 조사해 총 7개 자치구 14곳에서 특정업체 등에서 지분 거래를 한 정황을 파악했다고 이달 발표했다. 시는 대책 마련을 위해 법률, 감정평가 등 분야별 전문가 자문 회의를 개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는 모아타운 대상지 선정시 지분 쪼개기 등 투기방지를 위한 권리산정기준일을 고시했기 때문에 투기로 인한 분양권을 확보하기 어렵게 돼 있다"며 "다만 특정업체가 저가 매입 후 투기를 조장해 다수에게 매각 및 편익을 취한 것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 중으로 위법사항 발견 시 고발 등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도입된 지역은 △압구정아파트지구(24개 단지) △여의도아파트지구 및 인근단지(16개 단지) △목동택지개발사업지구(14개 단지)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재개발·재건축을 앞두고 투기수요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재건축지구에 대해 허가구역을 확대 적용하고 있으며 잠실 장미아파트, 신반포2차, 서초동 진흥아파트, 수궁동 우신빌라 등 특정 아파트나 빌라를 지정하기도 한다. 토지거래허가제 지역에선 구청장의 허가 없이 토지 거래를 할 수 없다.
경기도 역시 분당 등 일부지역에 토지거래허가제를 도입 중이다. 그러나 지난 3월 개발을 위한 토지 보상이 마무리돼 투기 우려가 해소됐다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전역을 토지거래 허가 구역에서 해제했는데, 해제 한 직후인 5월에만 원삼면 토지 거래가 약 800건으로 치솟는 등 투자자가 몰렸다. 이 거래량은 경기도의 군·구 단위의 한 해 토지 거래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원삼면은 반도체 클러스터 산단 호재를 통한 인근 추가 개발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실제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의 주 진입로인 보개원삼로는 클러스터 가동 전부터 도로 확장에 들어갔다. 이에 보개원삼로 확장 공사에 총 5만7185㎡가 편입되면서 다시 추가 보상이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있는 용인시 처인구 전체의 경우 인근 임야를 쪼개서 매입하는 등 무분별한 투기 수요가 집중된 곳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를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거래된 용인시 처인구의 토지 거래 8187건 중 57.2%인 4684건이 지분 거래 형식, 일명 지분 쪼개기 형태로 거래됐다.
문제는 이 같은 지분 쪼개기가 사업성을 떨어뜨려 사업 지연과 심지어는 무산의 원인이 되고, 토지 가격 상승률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북 익산과 경남 창원의 국가산단들도 부지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토지 보상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용인시 처인구는 현재 전국에서 가장 높은 토지 가격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지난해 지가 상승률에 따르면 처인구의 토지 가격 상승률은 6.66%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올해 1분기 기준으로도 1.59% 상승해 가장 가파른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주현 지지옥션 연구원은 "처인구의 토지 거래 양상을 살펴보면 소유자 거주 지역이 인천과 서울, 지방 등으로 전형적인 지분 쪼개기 방식의 기획부동산 활동으로 의심된다"며 "국가산단을 조성할 때는 토지 보상과 투기 방지 대책 등을 더욱 철저하게 계획해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