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 자체도 줄어···지난해 고점 대비 반토막
대출 규제에 보증금 마련 더 어려워져···월세 수요↑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올해 말 전세 만기를 앞둔 종로구 직장인 윤 모씨는 집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기존 2억8000만원에서 3억300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말에 걱정이 태산이다. 전세 보증금 갱신 상한선(5%)을 훌쩍 넘는 금액이지만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소진했기 때문에 이 아파트에 거주하기 위해선 꼼짝없이 보증금을 올려줘야 한다. 직장이 가까워 이곳 거주를 원했던 윤 씨는 보증금 증액이 어려워 결국 같은 아파트 월세를 계약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이다.
가을 이사철이 본격화한 가운데 서울 임대차 시장의 수요자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임대차 2법이 만 4년차를 맞으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이 소진돼 집주인들이 앞다퉈 전월세 가격을 올리고 있는 데다가, 신축 공급 감소로 임대 매물 자체가 줄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부담할 수밖에 없어서다.
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0.10% 오르며 72주 연속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특히 잇따른 대출 규제로 매매가격 상승세는 점차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전셋값은 오름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전셋값이 고공행진하는 이유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등이 포함된 임대차 2법이 올해 8월 말 시행 4년 차를 맞으며, 그간 집값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했던 전월세 가격이 현 시세대로 신규 계약이 이뤄지고 있는 탓이 크다. 임대차 2법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월세 계약 기간을 4년(2+2년) 동안 보장하고, 해당 기간 동안 세 인상폭을 최고 5%로 제한하는 것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올해 7~8월 중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된 아파트 전월세는 전국 2만6416가구다. 올해 말까지로 확대하면 총 6만4309가구의 갱신계약이 만료될 전망이다. 이들 임차인들은 현 시세대로 보증금이나 세를 올려 지불하거나, 집을 비워줘야만 한다.
반면 전세 매물 자체는 줄고 있어 가격 상승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8월 말 기준 2만6993건으로, 올해 초 3만5000가구에 비해 23%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초 고점 5만5882건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축 공급이 줄어든 데다가, 최근 은행권이 전세대출 문턱마저 높이면서 기존 전세 임차인들이 이사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4년 전 서울 아파트를 전세 계약했던 임차인들은 현재 같은 집에 살기 위해선 평균 1~2억원의 보증금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강남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 전세는 임대차 2법이 시행된 2020년 8월 상한가가 15억5000만원 수준이었으나, 지난달엔 1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성동구 신금호파크자이 전용 59㎡ 전세도 지난해 9월 상한가 13억원이었으나, 지난달 15억원에 계약됐다.
짧은 기간 동안 수억원이 오른 전세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는 임차인의 선택지는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서울살이를 포기하거나, 반전세 및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집값이 몇년 새 수억원씩 뛴 주거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 단지에선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수요자들이 월세를 선택하며, 월세가 얼마든 매물이 나오는 대로 거래되고 있다.
기자가 만난 서초구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아이들 학교 때문이라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지 못하는 기존 전세 임차인들이 많다"며 "갱신 계약의 경우 전세 대출이 막혀서 반전세로 전환해 계약을 갱신하는 사례가 몇 있었고, 요즘엔 인근에 더 저렴한 노후 아파트에 전월세가 나오는 경우 바로 연락해 달라고 하는 임차인들이 꽤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1000세대 되는 아파트에서 나온 전월세 물건 자체가 총 10건도 안된다. 부르는 게 값이라 오르는 건 당연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금리 인하마저 예고되고 있어 이자 수익이 낮아지는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평가다. 결국 임대 시장 수요자들의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최근 시장 분위기는 집값 급등과 대출 규제 강화가 임대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라며 "10월 이후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지만 정부의 대출금리 인하 폭이나 속도에 따라 연말까지 시장 상황이 달라질 것이고, 만약 대출금리 변동 없이 DSR 규제 등 추가 대출 규제가 계속되면 수요자들이 월세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