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유연탄 가격 떨어져···시멘트 단가 조정하자"
시멘트업계 "여러 요인에 인상 불가피···인하는 어려워"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건설공사비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핵심 기초자재인 시멘트의 가격 조정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건설업계가 시멘트와 레미콘업계를 대상으로 시멘트 가격 인하를 위한 협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시멘트업계는 전기료와 설비투자 비용 등을 이유로 가격 인하는 어렵다고 맞서면서 업계간 치열한 신경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30여개 중대형 건설사 구매 담당자 모임인 대한건설사자재직협의회(건자회)는 최근 시멘트업계 1위인 쌍용C&E와 한국레미콘공업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등에 시멘트 가격 협상 참여를 요청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지난해 시장 상황과 시멘트업계의 입장을 고려해 시멘트 가격 인상에 합의한 만큼 시멘트업계도 현재 건설업황을 고려해 시멘트 가격을 다시 조정 협의 하자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9월 시멘트 가격 협상에서 쌍용C&E와 건설·레미콘업계는 벌크 시멘트 가격을 톤당 10만4800원에서 11만2000원으로 7% 가량 올리는 방안에 합의했다. 다른 시멘트업체들도 비슷한 인상률을 적용해 일제히 시멘트 가격을 상향 조정했다. 시멘트 제조 때 핵심 원료인 유연탄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한 것이 가격 인상의 주요 원인이었다.
특히 시멘트업계는 지난해 가격 인상을 포함해 2021년부터 4차례에 걸쳐 가격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이에 2021년 상반기까지 1t당 7만5000원이었던 시멘트 평균 가격은 지난해 인상분이 반영되며 50%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국제 유연탄(연료탄) 가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향세로 전환해 올해 들어 크게 내린 만큼 시멘트 가격 재조정 요인이 발생했다는 게 건자회 입장이다. 2022년 9월 톤당 444.53달러로 급등했던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 1월 톤당 395.33달러로 하락한 뒤 3월과 7월에 각각 195.90달러, 148.45달러로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렸다. 올해 들어서는 1월 128.21달러, 3월 138.96달러로 120~140달러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다.
시멘트 가격 인상 후 유연탄 가격이 안정화하며 시멘트업체들의 경영 실적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한일시멘트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556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3% 급증했고, 아세아시멘트(326억원)와 삼표시멘트(177억원)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성신양회와 쌍용C&E의 경우 1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164억원, 102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반면 건설기업들은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인해 잇따라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구조조정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건자회가 원가 절감을 통한 위기 극복을 위해 시멘트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건자회 관계자는 "지난해 협상 당시 시멘트‧레미콘업계가 유연탄 가격 급등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시멘트업계 상황을 고려해 인상을 요구했고 유연탄 가격 하락 시 이를 반영해 재조정할 수 있다고 구두상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면서 "현재 유연탄 가격이 당시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데 비해 시멘트가격이 과도하게 높다는 판단에서 가격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협상에 나서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건자회 관계자는 "시멘트를 직접 구매하지 않는 건설사들의 경우 시멘트업계와 협의 창구가 없기 때문에 지난해 가격 인상을 협의한 업체와 단체들에 공문 형식으로 전달을 하게 됐다"면서 "현재 공문을 전달한 업체나 단체 등에서는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 상태로, 거래 당사자 간 가격 조정이 필요하면 충분한 협의나 소통이 당연한데 건설업계는 시멘트사들의 일방향적인 가격 인상 등 행태에 유감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시멘트업계는 협의를 통해 이미 인상된 가격을 내리는 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해 가격 인상분에는 유연탄 가격 이외에 전기료, 설비투자 등 여러 요인이 반영된 것이며, 앞으로 갈수록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만큼 가격을 재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 2차 가격 인상 때 유연탄값이 하향 안정화됐지만 유연탄만큼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전기료 인상분이 이를 상쇄해서 인상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양해를 구하고 결정한 부분인데 이제와서 유연탄을 이유로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아전인수'격의 행태"라면서 "최근 2년 가격 인상 이전에는 시멘트값이 동결이나 하향됐었는데 당시 분양가는 고공행진했다. 사실상 시멘트값이 공사비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은데 원자잿값과 공사비 상승 원인으로 시멘트값을 지목하는 것 자체가 건설업계의 손실이나 업황을 자재업계에 전가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 시멘트업체 관계자도 "시멘트가격이 유연탄값에만 연동된 게 아니고 이 밖에 산업용 전기료 인상 이슈, 친환경 설비 투자 비용, 원자잿값 상승 등 여러 복합 요인이 반영된 것으로, 지난해 9월 인상된 단가도 기타 자잿값 등 여러 인상폭이 전부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지난해 일시적인 실적 개선이 있었으나 앞으로 추가 전기료 인상, 출하량 감소, 경기 침체 등 악재가 산적한 만큼 가격 조정 요구를 받아들이긴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레미콘공업협회 관계자는 "건자회가 재협상 근거로 말하는 유연탄가격이 지금처럼 계속 안정될 것이란 보장도 없는 데다 시멘트 원가 인하 요인을 레미콘 제조사들이 파악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며 "지난해 가격 협상에서도 시멘트사와 건자회가 주도적으로 가격을 결정했으며 레미콘 업체들은 중간에 끼인 입장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가격 조정과 관련해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