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유연탄 수입 비용도 증가
거센 가격 인하 요구에 "타당성 없다"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올해 시멘트와 레미콘 출하량이 IMF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치솟은 환율로 인해 연료를 주로 수입해 사용하는 시멘트 업계의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시멘트를 주요 원료로 사용하는 레미콘 업계도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건설사들의 가격 인하 요구까지 더해지며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31일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올 한 해 시멘트 출하량은 약 4350만톤(t)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규모로 올해를 마감하면 IMF 외환위기 당시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지난해 출하량인 5024만톤과 비교하면 13.4% 이상 감소한 수치다. 실제로 시멘트 업체들도 올해 출하량이 10% 내외에서 많게는 20% 가까이 감소했다고 전하고 있다.
건설경기 악화로 레미콘 출하량도 급감했다. 한국레미콘공업협회는 올해 레미콘 출하량이 약 1억900만루베(㎥·부피의 단위)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예측대로라면 전년 대비 약 20% 감소한 수치로,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9년 약 9600만루베에 이어 최저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이 가운데 건자재업계의 제조 원가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최근 환율 급등으로 국내 시멘트 제조사가 유연탄 수입 과정에서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최대 30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국내 시멘트 업계는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356만톤의 유연탄을 사용해왔는데,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1달러당 1402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27일 기준 1480원으로 약 80원 올랐다. 이를 단순 계산했을 때, 3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특히 문제는 시멘트 제조업체들이 유연탄 의존도를 단기간에 낮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멘트 제조사는 시멘트 1톤을 생산할 때 유연탄을 약 100㎏ 가량 투입한다. 최근 폐플라스틱 등 순환연료 사용률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투입 연료의 60% 이상을 유연탄에 의존하고 있다. 순환자원 사용률을 늘리기 위해서는 1대당 1000억원에 달하는 특수 설비를 별도로 도입해야 해, 단기간에 유연탄 사용률을 낮추기는 쉽지 않다.
특히, 10월에 산업용 전기요금이 10.2% 인상되면서 전력비가 유연탄을 넘어섰다. 과거 30%대로 전체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유연탄은 가격 안정화와 출하량 감소, 순환자원 사용량 확대 등으로 전체 원가에서 20~25%로 하락했지만, 전기료 인상으로 전력비는 30% 초반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시멘트를 주요 원료로 사용하는 레미콘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시멘트 가격은 최근 3년간 4차례 인상돼 총 30%가 올랐다. 시멘트 가격에 대한 기준도 엇갈린다. 건자회는 시멘트 구매 가격이 공시된 1톤당 9만5000원이라고 파악하지만, 레미콘 업계는 자신들이 부담하는 운반비를 포함하면 실제 시멘트 가격이 10만5000원이라고 주장한다.
레미콘의 운송 단가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올해 7만2000원대로 시작한 레미콘 운송 단가는 지난 7월부터 소급 적용돼 내년 6월까지 7만6000원을 적용받는다. 이후에는 7만9000원대로 인상될 예정이다. 레미콘 업계는 모든 인상분을 합하면 레미콘 제조 원가가 1루베당 4000원 늘어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원가 인상 요인이 산적한 가운데 건설업계는 시멘트업계와 레미콘업계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업계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시멘트 제조사에 직접 가격 인하를 촉구해왔으며, 올 들어 유연탄 가격이 안정화된 점을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중국산 시멘트 수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환율 상승, 수요 침체, 산업용 전기료 인상 등으로 경영 환경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시멘트 업계의 입장이다. 지난달 국토부의 중재에서도 양측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이제는 시멘트 가격 인상의 부담을 레미콘 업계에 떠넘기는 형국이 됐다. 이에 따라 건자재업계의 부담감도 커질 전망이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국내에서 조달하지 않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는 가격과 환율 등 불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건설업계가 주장하는 유연탄 가격 안정화에 따른 시멘트 가격 인하 요구는 근시안적인 접근법"이라며 "환율 상승과 전력비 인상 등 원가 인상 요인이 많은 상황에서 시멘트 가격이 떨어졌다고 가정하고 레미콘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자재업계로서는 타당성이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레미콘공업협회 측은 "레미콘 업계의 수익성 악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극심한 출하 감소와 원가 상승으로 경영 환경이 열악한 업체부터 가동 중단 상황까지 예상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건설사가 레미콘 업계가 구매하는 시멘트 가격을 인정하지 않고 레미콘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우월적 위치를 남용한 사례로, 건자회는 우월적 위치에서의 일방적인 가격 인하 요구를 중단하고, 레미콘 업계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에 나설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