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지모빌리티(KGM)가 중국 5대 완성차 제조사 체리차와 손을 맞잡았다. 연간 260만대 이상을 판매하는 체리차와의 협력은 중·대형급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공동개발을 골자로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 담겨 있다.
KGM과 체리차는 지난 1일 중국 안후이성 소재 체리차 본사에서 협약식을 열고 본격적인 중·대형급 SUV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지난해 말 체리차 플랫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실질적인 제품 개발로 협력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KGM SUV 개발역량에 체리차 플랫폼을 접목해 차세대 SUV를 만들 계획이며, 2026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차세대 SUV가 KGM 기함급 모델 '렉스턴'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신차를 넘어 브랜드 상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책임질 핵심 차종으로, KGM은 이를 기반으로 파생 모델도 선보여 틈새 시장까지 공략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곽재선 KGM 회장은 "우리가 보유한 SUV 개발역량에 체리차 플랫폼 경쟁력이 만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협력은 단순히 차량을 함께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미래차 경쟁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도 읽힌다. 실제로 양사는 자율주행과 전장설계 등 미래차 핵심 기술에 대해서도 공동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다. 자동차가 단순한 탈것을 넘어 하나의 '스마트 디바이스'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체리차는 중국 내에서 자체 플랫폼과 파워트레인 개발 역량을 갖춘 몇 안 되는 완성차 업체다. 자율주행, 전장설계 등 미래차 핵심 기술에도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며, 수출 시장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신뢰도는 아직 과도기 단계에 있다는 평가도 있다. KGM 입장에서는 브랜드보다는 생산성과 비용 효율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현재 KGM은 어려운 경영 환경에 직면해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전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실적 역시 부진한 상황이다. 올해 1분기 국내외 실적은 2만6009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3% 감소했다. 내수는 33% 급감한 8184대에 그치며 부진이 두드러졌다. 수출은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4.2% 증가한 1만7825대를 거뒀지만, 하락세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체리차와의 협업은 KGM 입장에선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자본과 기술 역량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차 출시와 기술력 확보를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외부 협력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르노코리아의 그랑 콜레오스다. 이 차는 중국 지리차 플랫폼을 적용한 신차로, 뛰어난 상품성을 앞에서 출시 이후 시장의 호평을 받고 있다. 중국산 기술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점차 완화되는 분위기다.
본질은 품질과 경쟁력이다.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KGM이 곽 회장의 결단을 계기로 더 나은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을지 여부는, 체리차와 함께 만든 차세대 SUV의 완성도와 시장 반응에 달려 있다. 이번 협력이 오랜 정체에 종지부를 찍는, 흐름을 트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